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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주식, 부동산이 다가 아닌 세상에 대한 꿈

등록 2022-06-10 05:00수정 2022-06-10 10:32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송경동 지음 l 창비(2022)

송경동 시인의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를 읽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얻고’ 싶어하지만–인기, 명예, 돈, 인정, 안정, 먹을 것, 그리고 사랑도–송경동 시인의 시는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해준다. 그 아이들은 왜 죽었지? 그 청년은 왜 죽었지? 왜 진상은 규명되지 않지? 그의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지?’, ‘그런 세상이 되려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애틋한 꿈 비슷한 것을 마음에 품게 된다.

물론, 시 속에 질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욕탕 순례기’는 연대단식 농성하던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날이 나온다.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가난한 사람들 곁이었지만 참 행복했던 시간들.’ 읽는 나로서는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굶어서 앙상해진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해했을까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먹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송경동 시인은 간장과 두부를 좋아하니 간장에 조린 두부가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을까? 두부조림을 먹는 이 지상의 행복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송경동 시인은 많은 시간 누군가의 ‘곁'에 있었다. 대체로 침묵당하는 사람들 곁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우정, 고통과 연대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시 속에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은 사랑받고 또 사랑받는다. 나는 이것이 제일 좋다. ‘그들도 사랑받았단 말이지?’ 시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고통도 있지만 다 같이 웃을 만한 멋진 기억도 있다. 우정과 사랑, 연대는 절대 상상의 산물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행복도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함께여서 가능했다.

그러나 정말 고통스러운 시도 있었다. ‘돼지열병’에는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농민들은 제발 돼지들이 돼지열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던 그 시각 한편, “(…)한국의 증권가에선/ 정부의 첫 확진 발표와 더불어/ 빅수익, 대박 등의 환성이 터지며/ 돼지열병 테마주 찌라시들이 돌았다/ (…)우선 돼지고기 3개사, 대체육 3개사 동물의약품 9개사/ 사료 8개사, 방역 1개사 등 26개 종목이 급등했다/ 하루 새 239억원을 불린 회사도 있었다/ (…)포항 지진 발생 5분 만에 내진설계 종목을 띄웠고/ 월성 원전의 지진 감지 경보 발생 때는/ 신재생에너지 탈원전 관련주를 띄웠다/ 강원도 고성에서 초대형 산불이 났을 때는/ 화재 감지 시스템 개발업체 주식을 띄웠다/ 세월호 참사 때는 안전 관련주가/ 인양이 논의되던 시점엔 선박 인양 관련주가 테마였다/(…)” 이 시에 나도 한 줄 정도는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백신 운송 문제가 나왔을 때는 참치냉동컨테이너 관련주가 올랐다는 것을.

이 시를 읽을 때 나는 외로웠다. 이 시에 없는 것, 우리가 ‘함께’라는 생각이다. 비극은 투자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다. 주로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영혼, 그 영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추억들이 드나드는, 이런저런 관계로 복작이는 곳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 때 언제가 읽었던 문구 하나가 떠오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당신이 혼자일 때 얼마나 외로운지 압니다.” 그러나 이 시도 나에게 꿈을 꾸게 만들었다. 우리의 꿈, 우리의 탈출구가 주식, 코인, 부동산, 로또가 다가 아닌 세상에 대한 꿈.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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