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의 무늬
이다울 지음 l 웨일북(2020)
부산에서 연달아 사흘 동안 북토크가 예정되어 있던 지난여름, 피부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출발하기 전 피부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붉은 병변이 온몸에 퍼졌다. 참을 수 없는 통증과 가려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약 먹고 울고 약 먹고 잠들다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착한 책방에는 스무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피부염이 몸에 번진 상태예요. 피부과 약이 독해서 조금 몽롱한 상태인데, 혹시 목소리가 작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마스크 위로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았다.
북토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짐했었다. 앞으로 이런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지. 하지만 대비라는 말은 몸 앞에서 얼마나 가볍고 불가능한지. 몸은 언제나 예상을 빗나간다. 대전으로 글쓰기 강연에 갔을 때는 무대에 서자마자 눈알이 핑그르르 돌았다.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제가 저혈압이 있어요. 오늘은 유독 상태가 안 좋아서 조금 어지러운 상태예요. 조금씩 쉬면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강연이 끝난 밤,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 아픈 걸 티 내지 말았어야 했을까? 몸 관리도 능력이라고 떠들던 미디어 속의 말들이 나를 찔렀다.
다음 날 참가자들이 작성한 강연 후기가 도착했다. 왠지 겁이 나서 열지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파일을 열었다. “제가 저혈압이 있어서…홍승은 작가의 첫 마디는 사려 깊은 자기소개였다. 여느 강연의 연사처럼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책을 썼으며, 어느 학교를 나왔다’가 아닌 고백은 특별하게 들렸다. 사적이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정보를 밝히며 양해를 구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벌써 호감을 느꼈다.”
나를 바라본 한 분의 후기를 오래 바라보았다. 아, 우리는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지. 서로의 약함과 변화를 공유하는 사이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몸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가 생겨 다음을 기약하고. 살아가는 일처럼 강연도 흐르는 만남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마이크를 들면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당당한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다. 마이크를 든다고 갑자기 철인이 되거나 아팠던 곳이 낫는 것도 아닌데. 다만 나는 내 상태를 숨기지 않고 알리고, 그만큼 앉아서 듣는 사람들의 몸이나 마음이 다양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건강 대신, 다른 걸 상상한다. 이것은 이다울 작가의 <천장의 무늬>에서 읽은 문장에서 비롯된 상상이다. 만성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작가는 말한다. “뭐가 됐든 체력이 바닥나도 침대에 누워 웃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을 한다.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을까?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나 파티, 배달이 가능한 전시는 불가능한 것일까?”(58쪽) 도달할 수 없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보다, 작가의 말이 훨씬 현실 가능한 상상이었다. 나는 상상한다. 침대에 누워 강연하고, 참여자들도 각자 누워서 강연을 듣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는 잠들고, 코를 골기도 한다. 나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그림책을 읽어주며 꿈을 인도하는 할머니처럼 조곤조곤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꿈속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산다. 잠에서 깬 우리는 크게 기지개를 켠다.
집필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