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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자기 서사를 새로 만들려 했던 50년대 ‘문학소녀’

등록 2022-07-22 05:00수정 2022-07-22 09:38

문학소녀의 탄생
1950년대 여성 독서의 문화사

김윤경 지음 l 책과함께 l 1만3000원


1956년 이화여고 교사 신지식의 첫 소설집 <하얀 길>이 출간되자 문단과 독서계에서는 순수한 여학생들의 세계를 그린 ‘소녀소설’이 나왔다고 반겼다. 1961년에는 그 스스로가 10대 문학소녀인 양인자와 백혜자의 소설집과 시집이 발표되어, 본격적인 ‘문학소녀’의 시대를 알렸다. 문단 일각에서는 “소녀와 같은 감상을 즐기고 센티멘탈한 로맨티시즘의 시를 지어내기란 아주 쉬운 일”(김규동)이라 치부하며 이를 깎아내리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국문학자 김윤경은 <문학소녀의 탄생>에서 1950년대 등장한 문학소녀의 공통적인 ‘망탈리테’(심성)가 “소통의 주체로 온전히 자기를 구성하지 못하는 결핍과 억압의 현실인식에서 비롯한 비애와 번민의 정서”라 짚는다. 지은이는 미군정기부터 강력하게 추진된 한글교육의 성과로 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지고 학교·학생이 급증한 50년대에 다른 독자집단에 견줘 여성 독자의 글쓰기 욕구와 문학취미가 두드러졌던 현상을 주목하고, 그 성격과 의미를 톺아본다. 1954년 초등의무교육제도 시행을 계기로 독서대중이 광범위하게 부상하는 중에서도 여성독자의 성장은 특히 돋보였는데, 이는 <여학생>(1949년), <여원>(1955년), <주부생활>(1956년) 등의 창간에서 보듯 잡지를 매개로 한 여성 독자공동체의 형성으로도 나타났다.

&lt;여원&gt; 1959년 12월호에 실린 최희숙의 소설 &lt;슬픔은 강물처럼&gt; 지면 광고.
<여원> 1959년 12월호에 실린 최희숙의 소설 <슬픔은 강물처럼> 지면 광고.

&lt;여학생&gt;은 ‘백합모임’이라는 독자통신란을 활용하여 편집부와 독자, 독자와 독자 간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여학생>은 ‘백합모임’이라는 독자통신란을 활용하여 편집부와 독자, 독자와 독자 간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lt;주부생활&gt;의 ’주부문단’은 독자문예란으로, 가정주부 독자들의 글쓰기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예를 매개로 한 독자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주부생활>의 ’주부문단’은 독자문예란으로, 가정주부 독자들의 글쓰기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예를 매개로 한 독자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여성 잡지에는 독자응모수기, 독자문예교실 등 독자들의 글쓰기 욕구를 반영한 지면이 유독 많았는데, 지은이는 “여성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만큼이나 공적영역에서 다른 독자와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 이를 다시 공통의 감각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음을 의미한다”고 짚는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이들이 공유하던 정서가 자기를 표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녀다움의 순수함과 수줍음의 미덕은 온전히 말과 글로써 자기를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기에 소녀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오해와 소통의 좌절을 동반하고 있었다.”

미성숙한 감수성 또는 센티멘털리즘으로 격하되곤 했던 여성 독자의 문학적 취향은 “이들이 문단에 진출하여 창작에 참여할 수 없는 한계로 간주됐던 반면, 상업적 출판시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수용되면서 문화소비자로서의 여성적 취향으로 특화됐다.” 예컨대 가부장적 순결주의를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르는 연애를 그린 소설 <슬픔은 강물처럼>(1949년)은 베스트셀러가 되며 공식적인 등단제도와 무관하게 작가 최희숙을 ‘스스로’ 작가가 되게 만들어줬다. 전후 기존 여성 서사로서는 자기 삶을 설명해낼 수 없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새로운 자기 서사를 만들려 했던 당시 여성들의 현실인식이 그 배경에 있다고 지은이는 짚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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