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포루그 파로흐자드 지음, 신양섭 옮김 l 문학의숲(2012)
1954년 열아홉 살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부스스한 머릿결에 잉크 묻은 손, 그리고 꾸깃꾸깃한 원고를 든 소녀’의 모습으로 당시 이란에서 가장 이름있는 잡지사에 들어가 편집장의 책상에 원고를 내려놓는다. 파격적인 목소리로 여성의 욕망을 노래하면서 이란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논쟁적 시인으로서 첫걸음이 시작된 순간이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성공적인 데뷔는 개인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냈다. 시에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고 결국 열여섯 살에 시작한 결혼생활을 3년 만에 끝내고 만다. 시인의 영혼을 할퀸 것은 이혼 자체가 아니었다. 전남편은 시인에게 양육권 박탈과 면접권 완전 차단이라는 과도한 징벌을 내렸다.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나와 너의 도시는 이미 악마의 둥지가 된 지 오래/ 그런 날이 오리라, 네 눈이 후회를 머금고/ 이 슬픔에 젖은 노래를 읽을 날이/ 이 이야기 속에서 나를 찾고/ “그녀는 내 어머니였어”라고 말할 날이”(‘너를 위한 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년)의 한 장면. 파로흐자드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어두운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시에는 “미래를 희망하며 내 아들 컴여르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인을 둘러싼 온갖 추문과 냉담한 시선, 사회적 편견과 곡해도 끝내 예술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시인은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한 저항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고(세 번째 시집의 제목은 <저항>이다) 1962년 나환자 수용소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 집은 검다>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란 뉴웨이브 운동의 핵심 멤버로 자리한다.
완고하고 보수적이었던 원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고, 또 다른 새장이 되어 자신을 가두었던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시인으로 거듭난 그의 삶은 빛보다 어둠이, 행복보다 고통이 많았지만, 채찍질처럼 가혹했던 비난과 차가운 시선도 시인의 목소리를 막지는 못했다.
“나는 그대다, 그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며/ 내 안에서/ 수천 개의 멀리 떨어진 알 수 없는 것들과/ 소리 없는 연결을 문득 발견한 사람이며/ 대지의 강한 욕망이며/ 이 모두가 나다”(‘밤의 차가운 거리에서’)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서 파로흐자드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어두운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주인공은 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 지하의 외양간에서 시를 낭송한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듣는 이는 동굴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젖을 짜는 소녀다. 검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인이 결혼을 선택했던 때와 같은 나이에 소녀는 몰래 사랑을 시작했다. 영화는 끝내 소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지만, 외양간에 울리는 시가 불꽃으로 점화하면서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 간 시인의 영혼을 반짝 드러낸다. 시의 힘은 언뜻 미약해 보이지만 검은 세계를 드러내기엔 충분히 밝다.
이주혜/소설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