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에덴 범고래박물관에 전시된 범고래 ‘올드 톰’의 뼈. 올드 톰의 무리는 고래잡이 어부들의 사냥을 도왔다고 한다. 윌북 제공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윌북)에는 기사에 미처 담지 못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한데, 그 가운데 하나를 따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9세기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에덴 지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바다로 나아가 혹등고래를 사냥했는데,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온 원주민 집단 타와족으로부터 범고래 무리와 ‘함께’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범고래가 인간을 도와 혹등고래를 몰아주고, 그 대가로 혹등고래의 거대한 혀와 입술을 차지한다고요. 이를 진지하게 들은 데이비드슨가 사람들은 범고래와 함께 혹등고래를 사냥해 그 일대에 가장 성공한 고래잡이 가문이 됐습니다. 범고래들이 고래 떼를 인간들에게 몰아주면, 인간들은 작살로 그를 잡은 뒤 범고래들이 먼저 배를 채울 수 있도록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동안 범고래의 우두머리 암컷은 사람들의 몫인 살코기와 기름을 건드리지 않도록 무리를 단속했고요.
‘올드 톰’은 이 범고래 무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수컷이었는데, 그는 때로 선두 포경선에 달린 밧줄을 이빨 사이로 물고 고래 떼가 있는 사냥터까지 인간들을 끌고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올드 톰의 사체가 해안에서 발견됐는데, 이빨이 밧줄 걸이 모양으로 닳아 있었답니다. 올드 톰의 뼈는 에덴에 있는 범고래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타와족의 말에 따르면, 이런 놀라운 협업을 먼저 제안해온 쪽은 범고래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영토인 드넓고 거친 바다에 위태롭게 찾아온 인간들을 어여쁘게 여겼던 것일까요. 어디 바다뿐이겠습니까. 대자연의 너그러운 허락 없이는 잠시도 살아가지 못할, 작디작은 인간의 운명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