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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다산, 윤지충의 죽음 뒤 배교했지만 신앙을 놓지 않았다”

등록 2022-07-29 05:01수정 2022-07-29 09:56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정민 지음 l 김영사 l 4만4000원

서학과 천주교는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줬지만, 박해를 염려한 자기 검열 및 기록 은폐 등의 문제로 정확한 실상에 대해 천주교계와 학계 양쪽에서 여전히 논란거리가 많다. 다산 정약용이 배교 이후 신앙을 회복했는지 여부를 둔 논쟁, 당시 기록들에 대해 제기되는 신빙성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 지성사를 깊이 연구해온 고전학자 정민(한양대 교수)은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에서 1770년대 중반 이후 조선 천주교회 태동기부터 1801년 신유박해에 이르기까지 서학이 일으킨 소용돌이와 그 아래 감춰진 이야기들을 탐구했다. 기존 기록뿐 아니라 새로운 기록들을 찾아내고 그 행간을 읽어내려 시도해, 한국 교회사 전체를 포괄하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전주 전동성당에 세워진 윤지충과 권상연의 동상. 김영사 제공
전주 전동성당에 세워진 윤지충과 권상연의 동상. 김영사 제공

조선 천주교회는 1784년 초 이승훈(1756~1801)이 북경에서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옴으로써 시작됐다. 노론 벽파와의 정쟁에서 오랫동안 열세에 몰려 있던 남인 세력에서 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성호 이익이 그 중심에 있었다. 다만 이익의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에 서학의 수용과 배척은 남인 내부가 신서파와 공서파로 갈려 싸우게 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지은이는 서학과의 접촉이 “내부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지 못하고 위정척사의 명분 아래 세도정치에 날개만 달아주었다”고 평가한다.

권상연의 묘에서 출토된 백자 사발 지석. 김영사 제공
권상연의 묘에서 출토된 백자 사발 지석. 김영사 제공

윤지충의 묘에서 출토된 백자 사발 지석. 김영사 제공
윤지충의 묘에서 출토된 백자 사발 지석. 김영사 제공

지은이는 성호 직계인 홍유한과 그 제자인 권철신과 이기양, 이벽 등 초기 교회를 만든 신서파와 안정복, 황덕일 등 이를 공격한 공서파의 투쟁을 서술하며, 채제공과의 유착을 통해 조직을 보호하려 했던 신서파의 시도와 정조의 정국 구상 등이 얽혀 들어가는 정치적 혼란상까지 자세히 읽어낸다. 1785년 이벽이 집전하던 명례방 집회가 순라꾼에게 발각된 ‘을사추조적발’은 천주교 집회가 처음으로 국가 법망의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었는데, 지은이는 참석자들이 ‘얼굴에 분을 바른 채 푸른 두건을 쓰고 있었다’는 기록 등으로부터 당시 집회가 성회례일(‘재의 수요일’) 의식을 재현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윤지충과 권상연이 조상의 신주를 태워 없애고 제사를 거부한 일로 참수를 당한 1791년 진산 사건은 최초의 박해 사건이다. 윤지충과 고종사촌 간인 정약용은 이때 배교를 공언했지만, 지은이는 2021년 공개된 윤지충·권상연·윤지헌 무덤에서 나온 지석 사발에 적힌 글씨가 정약용의 글씨일 가능성이 크다며 “다산은 신앙생활을 놓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게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1795년 중국에서 온 주문모 신부가 밀고로 체포될 위기에 놓였을 때, 재빨리 이를 알려 신부를 피신시킨 것 역시 정약용이 한 일이라 한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묘에서 발굴된 지석 사발의 글씨와 다산의 해서 비교 대조표. 김영사 제공
윤지충과 권상연의 묘에서 발굴된 지석 사발의 글씨와 다산의 해서 비교 대조표. 김영사 제공

기존 기록들을 교차시켜 행간을 읽어내려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교회 창립기부터 신유박해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서학을 비판하는 남인 내부의 시선으로 기록된 강세정의 <송담유록>, 이재기의 <눌암기략> 등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료들을 적극적으로 연구한 결과다. 반면 지은이는 이승훈의 문집으로 알려져 성전으로 대접받아 온 <만천유고>는 여러 글을 짜깁기한 ‘가짜’ 책이라고, 여기 수록되어 이벽의 저술로 알려진 <성교요지> 역시 미국 선교사의 책을 베낀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느 한편에 함몰되지 않은 중간자적 시각”을 강조하기도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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