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제74회 칸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 행사장에 관객들이 가득 차 있다. 연합뉴스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l 마음산책 l 1만8000원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주성철 지음 l 씨네21북스 l 2만3000원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김도훈·김미연·배순탁·이화정·주성철 지음 l 푸른숲 l 1만6000원
영화 보고 기사 쓰는 일이 복인 건 맞지만, ‘영화 기자’에게도 즐겁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것은 별 감흥이 없는, 또는 공감 가지 않는 영화에 대해 기사를 써야 할 때 찾아온다. 내가 영화를 오독한 건 아닌지(거장의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이야!), 무식해서 숨겨진 의미를 못 본 건 아닌지(한 번 보고 판단하는 게 말이 돼?)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는데 마감은 코앞이다. 누군가는 ‘보고 느낀 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쓴 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쓴소리를 하는 일이 망설여졌다. 수십명이 몇 년에 걸쳐 고심해 만들었을 영화의 됨됨이를 단 한 번 본 내가 품평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럴 때마다 비슷한 고민을 먼저 했을 상석의 평론가들에게 기댔더랬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나란히 출간된 영화비평서 3권은, 영상 콘텐츠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사려 깊은 영화비평의 모범을 보여준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묘사하는 마음>은, <씨네21>에 연재했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몇 편의 에세이를 더해 엮은 책이다. 톰 크루즈, 틸다 스윈턴,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의 배우론부터 <스토커> <미드소마> <겟 아웃> <아이리시맨> <조커> 등 블록버스터까지 김 위원 특유의 단정하고 섬세한 비평이 담겨 있다. ‘영화의 이목구비’를 세심하게 묘사하는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전망 좋은 언덕’에서 영화 전체를 내려다보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영화 <덩케르크>가 ‘잔교(부두)-일주일’ ‘바다-하루’ ‘하늘-한 시간’의 세 시점을 하나로 엮었다며, “영화가 궁극의 타임머신이고 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의 양과 질을 ‘조작’할 수 있는 예술임을 입증”했다고 할 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진짜배기 평론가의 안목은 빛을 발한다.
사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는 점에서 모든 리뷰는 본질적으로 대상을 향한 러브레터다. 주성철 전 <씨네21> 편집장이 펴낸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가 우리를 매혹시킨 영화들에게 보낸 그의 연서인 이유다. 저자의 첫 영화평론집인 이 책은, 박찬욱·봉준호·류승완·고레에다 히로카즈·켄 로치 등 감독들의 세계관을 조망한 ‘감독관’부터, 윤여정·전도연·설경구·메릴 스트리프 등 배우들의 연기를 조명한 ‘배우관’, 홍콩 누아르·비(B)급 무비·프랑스 영화·저널리즘 영화 등을 장르라는 렌즈로 포착한 ‘장르관’까지 전시관을 빗댄 목차 속에 영화에 대한 애정관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영화는 예술 이전에 오락이다. 다섯명의 시네필(영화 애호가)이 함께 쓴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는 즐거움으로서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도훈 전 <허핑턴포스트> 편집장, 김미연 <제이티비시>(JTBC) <방구석1열> 피디, 배순탁 음악평론가, <씨네21>의 이화정 전 취재팀장과 주성철 전 편집장이 그 입담꾼들이다. 영화판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 영화로 먹고사는 일과 같은 직업적 에세이를 비롯해 좋아하던 극장과 돈 주고 본 첫번째 영화,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든 배우,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 모두가 찬양하지만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영화 등에 대한 수다를 읽노라면, 영화는 취미가 아니라 선생이자 친구, 연인이었고 무엇보다 인생이었다는 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