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l 복복서가(2022)
임영태의 장편소설 <여기부터 천국입니다>를 읽었던 때를 기억한다. 너무 아프고 버거웠다. 읽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몇년 뒤 이보다 더 아픈 소설을 만났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라는 작품이었는데, 아프다는 말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어울릴 작품이었다.
복제인간이나 인간을 닮은 로봇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무시무시한 것은 인간의 심연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를 묻는 질문을 던지다가 한순간 불쑥, 인간의 깊은 곳에 도사린 시커먼 덩어리를 보여준다. 나도 모르고 남도 몰랐던, 하지만 나도 갖고 있고 남도 갖고 있었던 묵직한 비밀을. 이기심과 잔인함과 폭력으로 이루어진 우리네 심연과 맞닥뜨리는 일은 끔찍하다. 불시에 해골과 뼛조각으로 화한 내 모습을 마주하는 듯한 일이다.
<작별인사> 읽기를 미룬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인공지능, 로봇, 클론 같은 단어가 튀어나오는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을 흔들어놓는지 알기에, 가능하면 피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작을 낼 때마다 죽 따라 읽었던 작가의 작품이어서,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책장을 넘겼고, 이내 빨려들어가 끝까지 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읽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초반에 세게 한 방 날린 뒤 서서히 완화제를 줌으로써, 독자가 인간인 자신에게 내장된 특성을 감사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매우 영리한 소설이었다. 이야기의 초반에 작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여기던 특성들을 가차없이 처분해 버린다. 모든 것을 쳐내고 커다란 공허를 조성한 뒤, 기발한 장치를 통해 하나씩 돌려주며 인간의 ‘인간됨’에 차근차근 경탄을 보낸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 몸에서 끊임없이 배설물을 내보내야 하는 ‘지저분함’, 냄새를 풍기는 특성, 죽음을 미리 인식하고 두려워하는 바보 같은 습성을 일일이 톺아보며 어루만진다. 각박하고 심각한 주제를 통과한 뒤 감성적이기 그지없는 문장들을 마음껏 흘려보내는 작가의 경지에 오른 기예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결국 ‘죽음’과 마주 서게 된다. 죽음 앞에 떨며 벌거숭이가 됐을 때,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의 핵심과 혹독하게 대면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우리는 아름다워진다.
이 작품은 <여기부터 천국입니다> <나를 보내지 마>보다 밝은 톤으로 끝난다. 인간의 근본을 가차없이 파헤치지만 엷게 희망의 기운을 뿜어내며 끝난다는 측면에서, 구병모의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과 나란히 놓아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을 추천하겠는가? 묻는다면 잠깐 망설인 뒤 답하겠다. 김영하가 발표한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그 말을 들은 다음에도 거부할 수 있다면, 읽지 않는 편이 좋겠다. 참지 못하고 책을 집어 드는 운명에 처하는 이들에게는, 독서에 돌입하기 전에 우선 자신을 보호해주는 환경을 마련하시라 충고하고 싶다. 나의 경우,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크게 틀어놓고 읽었다. 신의 존재를 믿고, 인간의 유한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보고 말소리를 듣는 것 외에는 타인을 접할 방법이 전무했던 시대의 영혼이 남긴 작품으로 나를 보호하면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