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예쁜 사람, 왜 그러나.” 무한 관용의 할머니식 육아

등록 2022-08-26 05:00수정 2022-08-26 10:02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l 사계절 l 1만3000원

심윤경의 첫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그의 등단작이자 200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두 책 사이의 유사성은 어디까지나 제목에 그친다. <…정원>에도 주인공 동구의 할머니가 나오지만, 그 할머니가 이 할머니는 아니다. “나의 할머니는 이기적이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동구 할머니가 아니었다.”

심윤경이 생각하기에 할머니의 가장 큰 특징은 ‘언어의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평생 한 말의 80퍼센트는 다섯 개, 열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가 그것. 청국장 냄새가 풀풀 풍길 듯한 이 말들을 들으며 어린 시절 작가는 안정감과 자신감, 창의력, 용기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심윤경. 사계절 제공
심윤경. 사계절 제공

심윤경의 할머니는 1905년에 태어나 그가 대학 신입생이던 1991년에 세상을 떴다. 작가가 할머니의 존재와 가르침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 계기는 그 자신 결혼과 출산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였다. ‘꿀짱아’라는 애칭을 붙이고 금이야 옥이야 아이를 돌보았지만, 육아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이와 부딪치고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기는 내 가슴에 눈꼽만치도 애착이 없었고 늘 마지못해 모유를 먹었고 엄마 젖 말고는 다 맛있다는 것처럼 이유식에 아주 쉽게 적응했다.”

이런 삽화는 애교라 해야 할 정도로, 자신을 닮아 격하고 예민한 아이와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키던 어느 날 할머니의 무심과 관용의 육아법에 생각이 미쳤다.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 할머니의 무한 인내와 관용이 그 어떤 육아법보다 효과적이었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 어린 시절 작가가 울고불며 생떼를 쓰면 할머니는 혼을 내키는커녕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원, 애두 참 별나.” 그래도 생떼가 지속될 때 할머니의 마지막 한탄은 이러했다. “예쁜 사람, 왜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야단칠 때 할머니가 했던 말도 싱겁기는 마찬가지. “착한 사람이 왜 그러나.”
어린 시절 할머니 품에 안긴 심윤경. 심윤경 제공
어린 시절 할머니 품에 안긴 심윤경. 심윤경 제공

말이 없어서 무심해 보였던 할머니의 양육에 무언가 특별하고 마법적인 것이 있었다면 “한결같이 따사로웠던 함박웃음”이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회고한다. “할머니의 긴 인생을 모두 증류해서 마지막 단 한 방울만을 남긴다면 바로 그 소리 없는 함박웃음이었다.” 할머니의 아름다움은 함박웃음이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