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l 사계절 l 1만3000원
심윤경의 첫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그의 등단작이자 200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두 책 사이의 유사성은 어디까지나 제목에 그친다. <…정원>에도 주인공 동구의 할머니가 나오지만, 그 할머니가 이 할머니는 아니다. “나의 할머니는 이기적이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동구 할머니가 아니었다.”
심윤경이 생각하기에 할머니의 가장 큰 특징은 ‘언어의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평생 한 말의 80퍼센트는 다섯 개, 열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가 그것. 청국장 냄새가 풀풀 풍길 듯한 이 말들을 들으며 어린 시절 작가는 안정감과 자신감, 창의력, 용기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심윤경의 할머니는 1905년에 태어나 그가 대학 신입생이던 1991년에 세상을 떴다. 작가가 할머니의 존재와 가르침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 계기는 그 자신 결혼과 출산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였다. ‘꿀짱아’라는 애칭을 붙이고 금이야 옥이야 아이를 돌보았지만, 육아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이와 부딪치고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기는 내 가슴에 눈꼽만치도 애착이 없었고 늘 마지못해 모유를 먹었고 엄마 젖 말고는 다 맛있다는 것처럼 이유식에 아주 쉽게 적응했다.”
이런 삽화는 애교라 해야 할 정도로, 자신을 닮아 격하고 예민한 아이와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키던 어느 날 할머니의 무심과 관용의 육아법에 생각이 미쳤다.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 할머니의 무한 인내와 관용이 그 어떤 육아법보다 효과적이었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 어린 시절 작가가 울고불며 생떼를 쓰면 할머니는 혼을 내키는커녕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원, 애두 참 별나.” 그래도 생떼가 지속될 때 할머니의 마지막 한탄은 이러했다. “예쁜 사람, 왜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야단칠 때 할머니가 했던 말도 싱겁기는 마찬가지. “착한 사람이 왜 그러나.”
어린 시절 할머니 품에 안긴 심윤경. 심윤경 제공
말이 없어서 무심해 보였던 할머니의 양육에 무언가 특별하고 마법적인 것이 있었다면 “한결같이 따사로웠던 함박웃음”이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회고한다. “할머니의 긴 인생을 모두 증류해서 마지막 단 한 방울만을 남긴다면 바로 그 소리 없는 함박웃음이었다.” 할머니의 아름다움은 함박웃음이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