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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죽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다면…딜리팅

등록 2022-09-02 05:00수정 2022-09-02 10:54

딜리터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김중혁 지음 l 자이언트북스 l 1만5900원

김중혁의 장편 <딜리터>는 초능력의 세계를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주인공 강치우는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이며 남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도 하지만, 사실은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물건과 사람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인데, 책 제목 ‘딜리터’는 이런 능력을 지닌 이를 가리킨다.

“제가 어릴 때부터 마이너스의 손으로 유명했어요. 뭘 만지면 전부 사라지고, 깨지고, 망가지고… 그거야말로 타고난 거죠. 모든 걸 망가뜨리는 사람.”

사라지게 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만지는 것마다 깨지고 망가지게 하는 ‘능력’에 관해서라면 이런 강치우의 말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딜리터란 부정적 소질을 긍정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전복적 상상력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 소설 속 딜리팅은 물건이나 사람을 없애거나 죽이는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라진 물건과 사람은 일종의 평행우주라 할 다른 시공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
소설가 김중혁.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소설가 김중혁.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소설 첫 장면에서 강치우는 전 여자친구 소하윤의 실종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소환된다. 강치우의 소설에 소하윤의 사연이 들어 있다는 신고에 따른 것인데, 그는 소하윤이 작성한 ‘스토리 저작권 양도’ 계약서를 형사에게 보여주고 풀려난다. “강치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구입해서 소설로 썼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건질 만한 구석이 있다는 게 강치우의 신념이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강치우는 또 다른 초능력자 조이수를 만나게 된다. 조이수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겹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강치우와 같은 딜리터들이 사라지게 만든 물건과 사람을 볼 수 있다. “강치우 씨는 눈을 감은 채로 지우고, 저는 눈을 감으면 지워진 게 보이고”라는 조이수의 말은 두 사람의 초능력이 상반됨과 동시에 보완적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소설은 강치우와 조이수의 초능력이 만나 빚어내는 환상적인 결과를 보여주며 마무리되고, 그 과정에서 소하윤의 실종에 얽힌 비밀과 강치우의 개인적 상처 역시 드러난다. 책에는 <딜리터 묵시록>이라는 가상의 문헌이 등장하는데, “딜리터는 현실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등의 구절은 딜리팅이 소설 쓰기와 닮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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