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소설 ‘날개’ 발표본.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이인직·1906)에서부터 최인훈의 <광장>(1960)까지 한국 근현대 대표소설 100편의 희귀 초판본이 나오는 전시가 독자를 기다린다. 인천 중구에 있는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이 추석 연휴 전날인 8일 개막하는 ‘100편의 소설, 100편의 마음: <혈의누>에서 <광장>까지’가 그것이다.
이 전시에는 <혈의 누>가 처음 실린 <만세보> 연재본과 <광장>이 처음 발표된 잡지 <새벽> 게재본 등 한국 근현대 소설 관련 희귀 자료 190점이 나온다. 시의 경우 한 세기 동안의 명작 시집들이 전시에 나온 적은 있지만, 주요 소설의 초판본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국내 유일의 근대 서지학 관련 학회인 근대서지학회가 공동 주관한다.
‘현대명작선집’ 원고본 표지.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특히 이번 전시에는 한국 최초의 소설 앤솔로지 원고본이 처음으로 발굴·공개된다. 1926년에 완성된 <현대명작선집>이 그것인데, 이 ‘자료’는 선집을 내기 위해 준비한 친필 원고본이다. ‘탈출기’로 잘 알려진 최서해와 요절한 작가 김낭운이 편집한 이 책에는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현진건 등 당대 최고의 소설가 15명의 작품 15편이 실려 있다. ‘1926년 10월10일’이라는 날짜가 명기된 서문에는 이 책이 소설 선집으로는 조선 문단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임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편자들은 당시까지 나온 작품 가운데 문단의 평이 가장 높은 것들만을 엄선했음을 말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실제 출판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책으로 출판되지는 못했지만 한국 최초 소설 선집의 원고본이라는 점에서 단 한 점만이 존재하는 매우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홍명희 소설 ‘임꺽정’ 전4권 전질.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상의 단편 ‘날개’ 최초 발표본과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작가 친필 서명본을 비롯해 육당 최남선이 낸 십전총서와 육전소설, 스위스의 독립 영웅 빌헬름 텔의 활약을 그린 <서사건국지> 국한문본과 순한글본,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인 <장한몽> 상중하 전질, 한국 최초의 작가 개인 작품집인 현진건의 <타락자> 초판본(1922), 염상섭의 <만세전> 1924년본과 1948년본,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소설인 홍명희의 <임꺽정> 일제강점기 발행 4권 전질 등 희귀 자료들이 대거 공개된다.
이와 함께 나혜석의 ‘경희’(1918)와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1917) 같은 여성 소설, 강용흘이 1931년 미국에서 출간한 <The Grass Roof(초당)>, 이미륵이 1946년 독일에서 발행하여 화제를 모았던 장편소설 <Der Yalu Fliesst(압록강은 흐른다)>,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김사량의 소설 ‘光の中に(빛 속으로)’(1939) 등 외국어로 창작되었지만 식민 치하 한국인들의 삶과 정서를 그린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본.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전시는 7개의 섹션과 1개의 특별 코너로 나뉘어져 있으며, 필사 체험 공간 ‘마음서재’와 엠비티아이(MBTI) 게임 등 다양한 체험 장치를 통해 우리 소설 명작들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함태영 한국근대문학관 운영팀장은 “근대서지학회와 함께 공들여 준비한 전시이다. 소설사를 구성할 수 있는 희귀 초판본들을 한 자리에서 이 정도 규모로 볼 수 있는 전시는 외국에서도 유례가 없다. 100편의 소설이 담고 있는 마음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100편 그 이상으로 가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00편의 소설, 100편의 마음: <혈의누>에서 <광장>까지’는 8일 개막해 추석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 관람할 수 있으며 내년 4월30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032)765-0305.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