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지음 l 열린책들 l 1만8800원
술, 마약, 도박 등 어떤 행위를 할 때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것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반복적으로 좇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도박 중독자의 뇌를 영상 검사로 살펴보면 경마로 백만 원을 벌어도, 천만 원을 잃어도 무덤덤하다. 작은 자극에도 흥분하던 뇌가 점점 더 큰 자극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게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중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
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가운데 한 장면. 열린책들 제공
만약 가족 중에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웹툰 <카산드라>의 작가 이하진이 지은 신작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지은이가 직접 겪은 그 상황을 만화로 옮긴 작품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주식을 공부한 지은이의 시동생은 어머니와 형제들의 자산을 도맡아 관리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로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점점 더 위험한 파생 상품에 손을 대는 등 시동생은 도박 중독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형수·며느리로서 그 위험을 경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지은이는 시댁 식구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등 뜻밖의 고통을 겪게 된다.
지은이의 경험은 ‘중독 가정’의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낸다.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이 중독자의 문제인데,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빚을 대신 갚아주는 등 중독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인생까지 빨려 들어가는 ‘공동 의존’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에서 그런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대개 어머니와 딸 등 여성들의 몫이 된다.
타인을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공동 의존을 강화할 뿐, 오직 내 인생을 사는 것이 회복의 길임을 말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