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l 글항아리(2021)
마흔다섯살 딸과 일흔일곱살 어머니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이민자들의 거주지였던 브롱크스의 다세대주택 시절을 회상하며 옛이야기 나누기를 가장 좋아한다. 언뜻 사이좋아 보이는 모녀는 함께 산책하면서도 불쑥 서로 할퀴고 물어뜯기 일쑤지만 그래도 늘 도시의 어딘가를 함께 걷고 있다.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비평가인 비비언 고닉은 오랫동안 ‘논쟁적 글쓰기’에 전념하다가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를 생생하고도 날카롭게 풀어낸 회고록 <사나운 애착>을 발표하면서 자전적 글쓰기의 전범이자 작가들의 작가 자리에 오른다. 고닉은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어떤 이야기든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상황이 있고 그 이야기를 해석하는 진실의 진술자, 즉 페르소나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사나운 애착>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수십년간 애정과 원망의 줄다리기를 반복해온 모녀 관계의 소 역사이고 페르소나는 브롱크스의 옛집에서 엄마와 이웃 여성들을 지켜보며 또 다른 여성으로 성장한 작가의 집요한 시선이다.
엄마는 약삭빠르고, 즉흥적이고, 무식한 다세대주택 여자들과 달리 똑똑하고, 웃기고, 활기 넘쳤고,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엄마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고 가끔은 그 세상을 열렬하고 절실하게 원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은 부엌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고 아빠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고 지리멸렬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빠의 사랑은 엄마의 불안과 권태를 보상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불안과 권태의 원인이기도 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모두의 슬픔을 독차지하고 아빠의 죽음에서 절대로 회복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엄마의 고통은 딸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딸이 거주하는 국가, 바짝 엎드려 따라야 하는 법과 규칙이 되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딸은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엄마의 고통에서 기원한 그 다짐은 이후 딸의 고통이 되어 새롭게 딸의 몸을 관통하기 시작한다.
너무 가까워 징그럽고 애써 멀어지려 하다가도 이내 끌려와 철썩 붙어버리고 마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여성 작가의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어머니는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고, 딸은 그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감정들을 문장의 형태로 쏟아내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라면 여성 작가들의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모녀 이야기는 그저 진부하고 흔한 소재가 아닌 여전히 못다 한 말들이 어쩔 수 없이 쏟아진 결과가 아닐까. 누구에게든 어머니와 딸이 징글징글하게 통과한 작은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어떤 조바심이 불꽃처럼 튄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정말 그렇네.” 딸은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하지만,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엄마는 강철 같은 목소리로 당부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이주혜/소설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