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책에 대한 제 나름의 이론들이 있습니다. “책은 빚이다”라는 게 그 하나입니다. 세상에는 읽은 책보다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책들이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입니다. 책을 읽은 상태를 완성태로 보면, 제 현실태는 늘 아직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을 빚으로 인식합니다. 또 다른 이론은 “책은 책등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책장은 늘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로 가득합니다. 책이 제게 책등을 보여주고 있지 않으면, 그 책의 존재를, 그리고 제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항상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의 책등이 눈에 들어오도록 신경 씁니다. 그렇게 책들로 하여금 갚지 못한 빚을 독촉하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느슨해진 일상에 긴장감을 줍니다. 조급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세상에는 언제나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존재하는 다채로운 책등들은 결국 하나의 목록을 이룹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너무 드물지 않게 연락을 해볼 친구들…. 무엇이든 자신과 관련 있는 목록을 만드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 역시 그렇습니다. 매주 기자들이 책과 씨름하며 ‘대신’ 읽어드린 결과물인 책 기사들을 지면에 내놓으며, 독자님들이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차곡차곡 늘려가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라 하니, 제 목록에 문학 작품들을 대거 추가하는 기회로 삼아보려 합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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