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 아민 말루프가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토지문화재단 제공
“오늘날 우리는 커다란 시장에 모여있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가까워졌지만, 서로의 차이들만 인식하며 가깝지 않다고 느끼는 역설적인 문제를 당면하고 있습니다. 문학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지금 중요합니다. 문학은 다른 사람을 피상적인 수준이 아니라 깊숙하게 알게 해주기 때문이죠.”
2022년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아민 말루프(73)가 한국을 찾았다. 12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루프는 “박경리문학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수상의 기쁨을 전하는 한편, 오늘날 ‘문화’ 그리고 그 핵심적인 요소로서 문학의 효용에 대해 강한 어조로 확신을 내비쳤다. 레바논 출신으로서 작품에서 중동 지역 사람들이 겪어온 역사적인 폭력과 고통을 주로 다뤄온 이 작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인류의 폭력과 고통에 대해 그는 “문화로부터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내보였다.
말루프는 줄곧 ‘세계적 사건들’에 관심을 두어온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기자였던 아버지(말루프 자신도 기자였다) 덕에 어렸을 때부터 세계적 사건들에 관심이 많았다. 세계적 사건들은 대개 슬프고 걱정되는 일들이지만, 비극과 슬픔 속에서도 인간의 모험은 계속된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세기 인간의 큰 갈등들이 벌어졌을 때, 그것이 끝나고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 등이 그렇게 진행됐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한반도의 위기 상황 등도 그런 맥락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이 “당신이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역사가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중동 지역 출신이기에 “인간의 진화·역사에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문학 작품을 더 가깝게 느낀다”고 밝혔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말루프는 문화와 문학이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류가 매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는 즉각적이고 단기적 해결 방안에만 만족한 나머지 장기적인 해결 방안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의 세계는 “타자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나머지 서로를 가깝게 느끼지 못하고 서로에게 공격적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나와는 다른 관점과 경험을 깊숙하게 알게 해주는” 문화·문학의 역할이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하다고 말루프는 강조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조화로운 세상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점에서 문화적입니다. 우리는 문화로부터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 아민 말루프가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토지문화재단 제공
때마침 국내에서 출간된 그의 소설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은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가 재난으로 치닫는다’는 작가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소설이라고 했다. 말루프는 “고대나 현대사를 다루지 않고, 내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역사를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존 소설들과 다르다”고 말했다.
말루프는 1949년 레바논에서 태어나 1976년부터 프랑스에 살며 소설뿐 아니라 역사와 문명 비평, 오페라 대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해온 작가다. 아랍 쪽 사료를 근거로 십자군 전쟁을 파헤친 논픽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1983), 제국주의가 판 치던 19세기 레바논 산악 지역 마을의 역사를 신화와 전승으로 그려낸 <타니오스의 바위>(1993), 오스만 제국의 종말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역사의 풍랑 속에서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삶을 그린 <동방의 항구들>(1996)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말루프 작품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 속 폭력과 갈등에 대해 끊임없이 용서와 화해,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심사평에서 “제 3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나 보통의 서구 중심주의 배척과 같은 이분법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타자성의 포용을 통해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허물고자 평생 노력한 작가”라고 밝혔다.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3일 오전 11시 서울시 송파구 롯데 시그니엘 76층 그랜드블룸에서 열린다. 15일 오후 7시에는 강원도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축하 공연이, 17일 오후 3시에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교보컨벤션홀에서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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