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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공생도 반목도 결국 돈…미-중 ‘제국 충돌’ 부른 자본 경쟁

등록 2022-10-21 05:00수정 2022-10-21 11:44

[책&생각]
홍콩 출신 사회학자 훙호펑, 미중갈등 분석
국가뿐 아니라 기업을 주요 행위자로 연구
‘차이메리카’ 공생이 ‘신냉전’ 갈등 된 배경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제국의 충돌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l 글항아리 l 1만6000원

미국과 중국의 관계, 특히 경쟁과 갈등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마다 동원되는 상투적인 풀이들이 있다. ‘신냉전’이라는 말에는 민주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 사이 극복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불가피하게 대립을 만든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미중 관계가 갈등으로 치달은 2010년대 이전에는 왜 갈등이 불거지지 않았는지 설명해내지 못한다.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은 어떤가.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자리에 미국과 중국을 대입하는 이 지정학 이론은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에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설명해내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단일하고 자율적인 국민국가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유일한 행위자일까?

홍콩 출신 사회학자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제국의 충돌>은 “국가 간 경쟁과 기업조직 간의 경쟁 혹은 초국적 연결을 세계질서와 갈등의 형성에 있어 상호작용하는 두 개의 자율적 영역으로” 보는 입장에서 미중 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지은이는 전작 <차이나 붐>(2016)에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책은 미국과 중국의 공생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2010년대 들어 그것이 왜 끝났는지 톺아본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기업들이 주된 행위자로 구실하는 두 나라 사이 ‘경제적 연결’에 주목한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수익성 저하에 대한 타개책으로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을 자신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세계에 끌어들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벌여왔다. 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되면서 경제 체제를 수출 중심으로 재편하려 한 중국엔 미국 시장 진입이 간절했으나, 당시 워싱턴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중국을 소련 이후 지정학적 경쟁자로 여기고 적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유무역 체제에 “스스로를 초대했다”. 중국 시장 개방으로 막대한 이익을 기대하는 미국의 기업들을 움직여, 중국을 적대하는 미국 내부 기류를 바꿔놓은 것이다. 빌 클린턴 정부는 1993년 집권하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 중국의 최혜국(MFN) 지위 갱신을 인권 문제와 연계하겠다고 선포했으나, 중국의 압박을 받은 에이티앤티(AT&T), 보잉, 엑손모빌, 휴스 등 미국의 거대 기업들과 월가의 로비로 1년 만에 이를 뒤집고 중국의 최혜국 지위를 조건 없이 갱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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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정점으로, 미국과 중국이 공생하는 ‘차이메리카’ 체제가 2000년대까지 주욱 이어졌다. “중국의 저가 수출품들은 미국의 소비 붐이 불타오르는 데 연료가 되었고, 중국은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다시 구입해 환류시킴으로써 미국의 늘어나는 재정 적자에 자금을 조달했다. 이로 인해 미국 금리는 낮게 유지될 수 있었고 미국 경제의 금융화와 금융 주도의 번영을 부채질했다.”

균열 역시 ‘경제적 연결’로부터 비롯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결정적이었다. 수출 호황을 유지해야 했던 중국은 부채를 늘려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등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의 덫에 빠졌다. 수익성을 회복하는 좋은 방법은 중국 시장에서 미국 및 다른 외국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압박하는 것이었다. 한때 우호적인 미중 관계를 보장하는 데 앞장섰던 미국 기업들까지도 이 같은 중국 경제의 국가주의적 전환에 따른 충격으로 ‘중국에 반대하는 기업 반란’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워싱턴에선 대중 강경책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도로 높아졌고, 이는 2011년 시작된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등으로 이어졌다. “일단 국가 안보에 치중하는 매파들이 견제받지 않고 정책 결정을 주도하게 되자, 워싱턴 당국은 (…)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당위를 내세워 정책을 채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군사 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 화웨이를 제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경향은 트럼프 정부를 거쳐 현재 바이든 정부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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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기업 사이 ‘자본 간 경쟁’은 중국 국내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지정학적 차원의 ‘글로벌 경쟁’으로 확대된다. 개발도상국에 자본 수출을 해준 대가로 종속적인 관계를 얻어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에서 보듯 중국이 급속히 커진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해 지정학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제국적 전환’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경쟁은 이제 전형적인 제국 간의 세력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진단한다. 지은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만들어진 다자간 경제 기구, 미국의 글로벌 군사 우산이 지배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한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의 투사는 제한적”일 거라고 본다. 다만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자본 간 경쟁이 결국 제국 간 경쟁으로 발전한 사례가 지금과 매우 비슷하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더 고조될 가능성이 높고 심지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사회학자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홍콩 출신으로 중국의 부상이 지구적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해온 학자다. 존스홉킨스대 누리집 갈무리
사회학자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홍콩 출신으로 중국의 부상이 지구적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해온 학자다. 존스홉킨스대 누리집 갈무리

지은이는 미중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쟁으로 치달은 20세기와 달리 지금은 유엔과 같이 합법적이고 다양한 글로벌 통치 기구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미중 관계의 격화는 이런 국제 기구 안에서의 경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중국과 미국 내부의 ‘경제 재조정’이다. 국내에서 재분배를 통해 이윤을 확보할 수 있으면, 두 나라 자본 간 ‘제로섬’ 경쟁은 누그러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모두 불균형 문제는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본 수출에 대한 충동과 두 나라 사이의 자본 간 경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고, 향후 몇년 동안 지정학적 경쟁은 불가피하게 격화될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도표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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