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란다스의 개> 속 한 장면. 영화 갈무리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부끄러움’에 대한 영화들이라 생각합니다. <플란다스의 개>에는 백수와 다름없는 대학 ‘시간강사’가 교수 자리 하나 얻어보고자 대학 총장에게 1500만원을 ‘뇌물’로 바치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돈으로 가득 채운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지하철을 탄 주인공은 아이를 업은 채 힘겹게 구걸하고 있는 여인에게 몰래 1만원짜리 한 장을 빼 건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그렇게라도 만회하려는 듯이. 죄 없는 이를 몰아 죽음에 이르게 만든 형사는 희생자의 피가 묻은 손을 멍하니 바지춤에 닦고(<살인의 추억>), 살인을 하면서까지 아들의 죄를 덮은 어머니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떨쳐내려는 듯 관광버스 안에서 신들린 듯 춤을 춥니다.(<마더>)
따지고 보면, 모든 예술 작품들이 결국은 부끄러움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세세한 풍경들을 놓치지 않는 문인들은 우리의 부끄러움들을 드러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니 에르노는 ‘임상적 예리함’으로 부끄러움의 실체를 까발립니다. 시인 윤동주는 ‘육첩방’으로 상징되는 ‘남의 나라’에서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 세상과 배를 대고” 살아온 “투명의 대명사” 같은 유리창을 부러워하는 ‘부끄러움의 시인’, 김수영도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보다 야멸차고 비열한 인간의 세계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근원적인 부끄러움을 심어놓지만, 이 세계 어디에서도 부끄러움을 가르치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문학으로부터, 예술로부터 부끄러움을 배워야 합니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같은 기분과 함께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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