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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등반, 카약, 서핑, 대장간…이본 쉬나드를 말하는 것들

등록 2022-10-21 05:01수정 2022-10-21 18:52

극한 스포츠와 선이 깨우친 삶의 철학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지음, 이영래 옮김 l 라이팅하우스(2020)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타락한 시대에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 놀랍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가 4조원이 웃도는 회사 지분 전부를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보호 활동을 목적으로 한 재단과 비영리기구에 기부했다.

이 기사를 보며 그의 삶과 경영철학이 궁금했다. 어느 분야에나 있을 법한 이단아가 한 번쯤 꿈꿔 볼 수는 있지만 정작 실천하지 않을 일을 저지른 데는 그만의 철학이 있으리라 믿어서다. 호기심을 품고 서둘러 읽은 책은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다. 제목은 유연근무제를 뜻하는데, 그가 대장간에서 피톤(암벽등반에 쓰이는 금속 못)을 만들다가 2m짜리 파도가 몰려오면 문을 닫고 서핑하러 갔던 경험에서 비롯한 제도다.

알려진 대로 그의 이력은 단순하다. “등반가였고, 서핑을 하는 사람, 카약을 하는 사람, 스키를 타는 사람, 대장장이였다.” 하지만 그의 경영철학은 이 이력에서 담금질되었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사람들이 위험한 스포츠라고 부르는 것에 열정적으로 참여해 얻은 유무형의 결과물”이라 했다. 암벽이나 빙벽을 타는 등산인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일에 매달리는 데서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다. 소비문화에 저항했으며, 정치인과 사업가는 더러운 인간이고 기업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1960년대를 풍미한 청년정신의 화신이었다. 대장장이를 하며 선(禪)의 세계를 익혔다. 과도한 행동을 자제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고, 피톤을 잡고 두드리는 과정이 궁도나 다도처럼 유려하고 우아하기를 바랐다. 선의 정신을 통해 그는 단순해지는 것이 풍성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을 깨달았다. 스포츠와 선은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본분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지려 할 때 파멸에 이른다는 깨우침을 주었다. 1990년대 큰 위기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정신적 바탕힘이었다.

그는 피톤을 만들어내면서 사업가 대열에 올랐다. 그런데 이 제품 탓에 자신이 “환경파괴의 장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머로 피톤을 박아놓고 빼는 과정에서 암벽이 심하게 망가졌다. 유럽인은 등반을 정복의 개념으로 보았다. 그래서 뒤따르는 정복자를 위해 장비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랄프 왈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뮤어와 같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산에 오르거나 자연을 찾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정신에 동의했다. 손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알루미늄 초크를 생산하면서 ‘클린 클라이밍’ 개념을 널리 퍼트린 이유다. 그는 제도교육이 낳은 인물이 아니다. 대자연과 그 앞에서 경이와 겸손을 느끼는 야생적이고 주변적인 삶이 빚어낸 놀라운 인물이다.

그가 어찌 늘 지향하는 가치대로 경영할 수 있었겠는가. 1990년대 초반 120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그동안 거쳐 간 최고경영자(CEO)가 7명에 이른다. 회사 주차장에는 스포츠실용차(SUV)가 서 있고 직원 일부는 지속 불가능한 섬유로 짠 옷을 입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타락한 시대에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순례길의 종착점에 이른 그는 우리 시대의 선사(禪師)일지도 모르겠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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