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예술하기
임옥상 보는 법
박소양 지음 l 한길사 l 2만8000원
“기존의 미술은 보수적이고 전통 있는 것이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이든, 유한층의 속물적 취향에 아첨하고 있거나 또는 밖(현실)으로부터 예술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와 이웃의 현실을 소외 격리시켜왔고, 심지어는 고립된 개인의 내면적 진실조차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왔습니다.”
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의 필요성을 주창한 ‘현실과 발언’ 창립 선언문의 일부다. 영미권에서 활동해온 미술사학자 박소양(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예술디자인대학 부교수)은 <한국 땅에서 예술하기>에서 이 ‘이웃의 현실’이야말로 한국 민중미술의 고갱이였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 “당시 엘리트 지식계급이 ‘민중’을 상상으로 만들어 낭만적으로 이상화했다”고 폄하하는 것과 달리, 민중미술은 ‘사회 기층 다수’(multitude)의 경험을 미학적으로 구현하는 데 그 의미가 컸다는 것이다. “민중미술의 미학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와 경제 아래서 객체화되고 권리를 박탈당한 다수 사람들의 권리 회복에 유의미한 서사를 제공하는 ‘자기반영’에 있었다.”
책은 1세대 민중미술가 임옥상(72)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예컨대 임옥상의 작품에는 파헤쳐진 땅, 빨간 웅덩이가 고인 땅 등 ‘흙’(땅)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전통을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다수에게 친숙한 경험을 통해 소통의 장을 여는 한편 그에 대한 내재적 비판까지 감행한 것이라 말한다. 또 ‘성장’이라는 면죄부 아래 소외된 것들을 보듬는, 생태적 미래에 대한 비전 또한 그의 작품 세계에 담겨 있다고 풀이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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