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마지막 세대’의 활동가들이 지난 23일(현지시각) 독일 포츠담의 바르베리니 미술관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연작 그림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끼얹은 뒤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 세대 제공. AP 연합뉴스
‘최후의 인간’은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친숙하기 그지없는 소재입니다. 새로운 역병이든, 핵전쟁이든, 외계인의 침략이든 어떤 이유로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1797~1851)의 소설 <최후의 인간>(1826)은 전염병으로 인해 멸망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려, 이런 ‘아포칼립스’ 상상력의 기원이 된 대표 작품으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장-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1746~1805)이란 프랑스 사제가 쓴 <최후의 인간>(도서출판b)이란 책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작가 사후 출간된 이 책은 메리 셸리 등 당시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가들에도 영향을 줬던, 말하자면 ‘원조의 원조’격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원조의 원조’ 작품 속에서부터 인간은 세계가 절멸하게 된 데에 오롯이 책임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운명의 책’은 이렇게 전합니다. “인간들이, 지구가 자신의 품에 안고 먹여 살린 바로 그 자식들이 지구의 축복을 가득 받고 나서는 부모살해를 저지른 것이다. 지구가 너그러운 손으로 내어주었던 풍부한 과실들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인간은 지구의 골수부터 시작해 생명의 마지막 구성 성분까지를 쥐어짜 내느라 혈안이 되었다. 인간들은 과도한 향락을 즐기다가 자신의 힘을 탕진했고 마침내 활력을 잃어버렸다.”
18~19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명확히 지적한 사실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과연 언제까지 모르쇠로만 일관할 작정인 걸까요?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우리를 둘러싼 ‘유리관’을 깨고 ‘붕괴’를 직시할 수 있을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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