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사회정치학
파블로 세르비뉴·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강현주 옮김 l 에코리브르 l 1만8500원
“무너지고 깨어짐.” 상대방의 내면이 궁금한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은 휴대폰 검색을 통해 ‘붕괴’(崩壞·collapse)란 말의 뜻을 이렇게 새겼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내면이 아닌 세상이 “붕괴됐다”고 말할 때 과연 그 뜻은 정확히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일어날까? 일어난다면 어떤 방식으로?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닳고 닳은 클리셰들을 동원해 ‘세상의 종말’을 지겹도록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붕괴를 ‘현실로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붕괴의 사회정치학>은 프랑스의 농업경제학자와 생태학 전문가가 함께 쓴 책이다. 2015년에 출간돼 “녹색계와 지식계에서 주목받는 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은이들은 긍정적(‘하루라도 빨리 붕괴에 대응해야 한다’)이거나 부정적(‘재앙을 부풀리고 있다’)인 반응에 힘입어 붕괴를 아예 연구와 활동의 대상(붕괴론·붕괴운동)으로 삼아 왔다. 붕괴를, 그러니까 붕괴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은 도대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지은이들은 그것이 “우리가 상상해왔던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끝났다’고 탄식하는 패배주의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 논의하는 희망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뜻부터 명확히 새겨보자. 지은이들은 전 유럽의회 의원 이브 코셰의 정의를 인용한다.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주택, 의복,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지은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의 ‘열-산업’ 문명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산업화 시대에 출발한 이 자동차는 서서히 속도를 높여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기하급수적으로 속도를 높여가며 달리고 있다. 그러나 열역학 법칙에 따라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연료가 없으면 달릴 수 없는 것이다. 산업 문명을 추동하는 화석 연료 및 자재는 이미 그 한계를 뚜렷하게 내보이고 있다.
물리적 한계와는 다른, 시스템 자체를 파괴할 위험이 있어서 넘어선 안 될 문턱인 ‘경계’란 것도 있다. 예컨대 우리는 역사적 평균보다 4도 높은 온도의 기후에서 살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결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감소뿐 아니라 해양 산성화, 성층권 오존 파괴, 질소와 인의 순환 파괴, 대기 에어로졸 증가, 담수 소비, 토지 용도 변화, 화학물질 오염 가운데 우리는 몇 가지의 경계를 이미 넘어선 상태다.
무엇보다 지은이들은 “우리 시대의 특징일 수도 있는 모순은 문명이 강력할수록 더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라 지적한다.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은 매우 강고한데, 바로 그 이유로 붕괴할 위기에 처한다. 우리 열-산업 문명은 ‘상호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경로 의존적’이다. 예컨대 화석 연료의 보편적 사용은 오직 이를 사용하는 것을 지배적으로 고착시키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해왔을 뿐 아니라, 금융 시스템 등 전체 시스템과 복합적이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쉽사리 우리의 길을 바꾸기 어려운, ‘잠금 효과’에 묶여 있다.
만약 기후위기나 생태계 교란 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겠다면 화석 연료의 생산·소비를 중단하는 등 가동 중인 엔진을 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만약 엔진을 끄지 않겠다면? 더 많이 채굴하고 더 많이,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이 역시 기후와 생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붕괴라는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어떻게 해도 붕괴를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붕괴할까? 지은이들은 엔지니어 드미트리 오를로프의 이론을 참조하여 붕괴를 다양한 특성과 강도에 따라 단계별로 제시해본다. “평소처럼 일이 돌아갈 것”이란 희망이 사라질 때 금융 기관이 파산하고 자본에 대한 접근성이 사라지는 ‘금융적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시장이 물자를 제공할 것”이란 희망이 사라질 때 상품은 쌓여가고 공급망은 끊어지는 ‘경제적 붕괴’가, “정부가 당신을 돌봐줄 것”이란 희망이 사라질 때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패하고 정치 계급은 정당성과 타당성을 잃는 ‘정치적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동료들이 당신을 돌봐줄 것”이란 희망이 사라질 때 세계 인구가 감소하고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사회적 붕괴’가, “인류의 선함에 대한 믿음” 자체를 잃을 때 인간미 자체가 사라지는 ‘문화적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사회가 다시 시작할 환경 자체를 잃는 ‘생태학적 붕괴’다. 그 복합성과 고도성을 고려하면, 우리 시스템은 ‘천천히 평화적’으로가 아니라 “비선형적인 효과가 결합하면서 난폭하게” 붕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은이들은 대규모 붕괴의 기한이 “2050년이나 2100년께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점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붕괴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기술이나 경제 성장 등 붕괴를 피하기 위한 ‘해결책’이란 게 따로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짧은 풍요로움’에 뒤이어 찾아올 ‘긴 초라함’의 시대에, 우리에겐 “우리의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길만 있을 뿐이다.”
회복할 수 있도록 ‘전환’을 논의하는 것이 진짜 과제다. 이것이 ‘재앙주의자’란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지은이들이 붕괴라는 주제를 이토록 천착해온 이유다. 책 말미에는 2021년에 실은 ‘후기’가 담겨 있다. 6년 사이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있었지만, 붕괴를 논의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가장 희망적이라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붕괴론), 다른 세계를 상상하며 용기를 가지고(붕괴 철학), 살아 있는 힘을 모아 대안을 만들고 파괴적인 힘에 맞서 싸워야(붕괴 실천)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도표 에코리브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