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리지 보고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현대 복지국가의 탄생
윌리엄 베버리지 지음, 김윤태 엮음, 김윤태·이혜경·장우혁 옮김 l 사회평론아카데미 l 2만원
<베버리지 보고서>는 20세기 복지국가의 출발을 알린 역사적인 문서다. 이 문서가 발간 80년을 맞아 한국어로 번역됐다. 이 보고서의 정식 이름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인데, 보고서의 작성자인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1879~1963)의 이름을 따 ‘베버리지 보고서’로 통용된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1942년 12월1일 제2차 세계대전의 포성 속에서 탄생했으며. 전후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베버리지 보고서>가 제시한 보편주의 원칙, 국민 최저선, 아동수당, 사회보장, 국민보험은 오늘날 복지국가를 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두가 돈을 내고 모두가 혜택을 본다’라는 복지국가의 구호가 이 보고서로 말미암아 등장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베버리지는 19세기 영국의 전형적인 중산계급 출신으로 변호사가 된 뒤 런던 자선단체 토인비홀에서 활동하며 빈곤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당시 영국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로 유명했던 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 부부의 소개로 윈스턴 처칠을 만나 국민보험 관련 업무를 맡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페이비언협회가 세운 런던정경대학 총장으로 18년 동안 재직하며 영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었다. 그 뒤 옥스퍼드대학교 유니버시티칼리지 학장을 지낸 베버리지는 1941년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에 관한 부처 합동 위원회의 책임을 맡았는데, 이 시기에 작성한 문서가 <베버리지 보고서>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쓴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베버리지 보고서>는 발간 당시 대단한 관심을 모았고 영국 국민의 88%가 이 보고서에 우호적이었다. 반대 여론은 6%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당을 이끌던 처칠은 이 보고서를 마뜩잖아했고, 전후 총선에서 <베버리지 보고서>를 전폭 수용한 노동당에 참패하고 말았다. 당시 이 보고서에 대한 관심은 유럽 대륙으로까지 퍼져나갔는데, 히틀러의 지하 벙커에서도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담은 문서가 발견됐고, 대한민국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의 책상에도 놓여 있었다고 한다.
한국어판 <베버리지 보고서>는 원문 300쪽 가운데 부록에 해당하는 부분과 시의성이 적은 부분을 빼고 한국사회에 유용한 내용을 선별해 번역했다. 또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김윤태 고려대 교수, 윤흥식 인하대 교수가 쓴 세 편의 보론을 덧붙였다. 옮긴이이자 엮은이인 김윤태 교수는 “한국의 학자들과 정책 결정자, 활동가들이 이 번역본을 발판 삼아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적합한 ‘베버리지 2.0’ 또는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를 만드는 데 노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