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진부화의 세계 [책&생각]

등록 2022-12-16 05:00수정 2022-12-16 11:06

책거리
‘글리치’를 동반한 벡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글리치’를 동반한 벡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문명에서는 뭐든 늘 새것처럼 반짝이며 그럴듯해 보입니다. 0과 1만으로 이뤄진 디지털 제품들은 먼지가 앉지도 때가 타지도 않으며, 마치 영생이라도 할 듯 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색이 바래지거나 낡아 바스러지지 않는 디지털 사진, 테이프처럼 늘어날 일 없이 깔끔한 디지털 음원, 시간이 지나도 열화 현상 없는 디지털 영상…. 클라우드 서비스 덕에, 그것을 담아내는 낡은 기기들이 여러 차례 교체되는 과정에도 데이터로 이뤄진 디지털 제품 그 자체는 정말로 ‘구름 위’에서 내려온 듯 언제나 생생합니다.

그러나 때로 이 디지털 문명이란 것도 어쩌면 ‘그럭저럭, 대충’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로 착각하여 제시된 사진 추천 등 신뢰하기엔 미심쩍은 알고리즘, 국외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의 누리집이나 애플리케이션에 간혹 띄워지는 조악한 번역의 한국어 메뉴, 그 누구도 원인을 결코 알 수 없을 접속 지연이나 오류, 나도 모르게 망실되고 마는 하드디스크 속 자료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에 간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어쩐지 역부족인 모습 같달까요.

끝없이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되레 적당히 쓰고 버려지는 것들만 만드는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 <디컨슈머>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입니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우리 주변이 단시간에 그럭저럭 쓸 만한 것들로만 가득 채워지고 있다면, 궁극적으로 그건 거기에 드는 인건비를 저렴하게 유지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할 겁니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을지, 새삼 다시 생각해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1.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2.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뉴진스 “새 활동명 공모” 이름 버릴 각오, 하이브에 소송전 선포 3.

뉴진스 “새 활동명 공모” 이름 버릴 각오, 하이브에 소송전 선포

‘코미디·오컬트·로맨스’ 박 터지는 설 극장가 누가 웃을까 4.

‘코미디·오컬트·로맨스’ 박 터지는 설 극장가 누가 웃을까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가수 한명숙 별세…향년 90 5.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가수 한명숙 별세…향년 90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