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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는 끝내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로 남을 뿐 [책&생각]

등록 2023-01-13 05:00수정 2023-01-13 10:17

[책거리]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포르투나 여신을 그린 15세기 프랑스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포르투나 여신을 그린 15세기 프랑스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최근 종영한 한 드라마에 나온 대사를 듣고,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앞에 선 우리 인간 존재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삶은 우리가 통제하는 우리 내부가 아니라 우리 외부에서 저항할 수 없는 폭풍우처럼 밀려옵니다. 인간은 그것을 때론 행운으로 때론 불운으로 점쳐보고 대비해보겠다 설쳐보지만, 운명은 그런 것 따윈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포르투나(운명의 여신)가 가혹하게 굴려대는 수레바퀴 위에서 이리저리 휘둘려지는 것이 너무도 괴롭기에 사람들은 그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아서라도 그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포르투나는 종종 앞머리나 뒷머리를 아예 밀어버린 모습으로 그려진다지요.

앞서 말한 드라마에서는 ‘강한 힘’을 추구하는 자가 악인으로, 나약하고 하찮다 여겨지는 존재들을 ‘지키려’ 하는 자가 선인으로 그려집니다. 외부에서 난폭하고 변덕스럽게 찾아오는 저 포르투나의 힘을 통제할 수 있도록 그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 싶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바로 선인의 세계와 악인의 세계를 가르는 강, 짙고 뿌연 안개로 뒤덮인 그 강을 건너게 하는 나룻배입니다. 일단 그 강을 건넌 자는 건너편 역시 폭풍우가 치는 황무지일 뿐이며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끝끝내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로 남을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저 지키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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