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 l 서광사 l 3만3000원
미셸 옹프레(64)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랑스 철학자다. 니체를 따르는 이 반역의 철학자는 2002년 ‘인민대학’을 설립해 대중을 상대로 하여 철학을 알리고 있으며, 2020년에는 무크 <인민전선>을 창간했다. 옹프레는 100권이 넘는 책을 쓴 다작의 작가이기도 한데, 이번에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는 옹프레의 최근 저서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2500년 서양철학사를 종단하는 옹프레식 개괄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부터 21세기 문턱에서 세상을 떠난 자크 데리다까지 33인의 사상과 행적을 엮어 속도감 있게 전달한다. 이 책의 독특함은 등장인물들의 초상화를 앞에 세워놓고 그 초상화에서 드러난 묘사의 특성을 포착해 주인공의 삶과 생각을 소개한다는 데 있다. 초상화를 중심에 놓다보니, 유명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초상화 감상자 곧 옹프레 자신에게 이야기할 거리를 제공해주지 않는 철학자는 빼놓았다. 그런 선별 기준에 따라 소크라테스·아퀴나스·칸트 같은 철학자는 이 책에 들어와 있지만, 라이프니츠·셸링·헤겔 같은 철학자는 논평에서 제외됐다.
프랑스에서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로 꼽히는 미셸 옹프레. 위키미디어 코먼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면 논평자 옹프레의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철학자들을 보는 옹프레의 시선에는 호오가 뚜렷하다. 비판의 펜은 날카로워서 신랄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아주 따뜻한 눈으로 응대하는 철학자도 있다. 16세기 작가 미셸 드 몽테뉴(1533~1598)가 옹프레의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이다. 몽테뉴가 환대를 받는 것은 <수상록>(에세)이라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형식의 책을 썼기 때문이다. 옹프레가 ‘엄청난 책’, ‘백과사전적인 책’이라고 부르는 <수상록>은 “유럽의 다른 철학들을 위한 길을 마련해주는 모든 프랑스 철학을 가능케 한” 책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철학에 어떤 원칙을 세워주었는데, 옹프레는 그 원칙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간결하고 명쾌한 글, 일인칭으로 사고하는 것을 마다지 않는 주관성의 수사학, 교수들이나 대학의 엘리트가 아닌 최대다수를 위해 사고하려는 마음, 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능케 하는 심리학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옹프레 자신에 대한 묘사라고 해도 좋을 말이다.
옹프레의 냉소적인 시선은 주로 현대 사상가들을 거론할 때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20세기 프랑스 앙가주망의 상징과도 같은 장폴 사르트르와 동반자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판할 때 옹프레의 펜 끝은 칼날처럼 서늘해진다. 옹프레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성적 착취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보부아르는 평생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감췄지만 양성애자였다. 고등학교에서 철학 선생으로 있을 때 보부아르는 자기 제자들을 사르트르의 침대 속으로 밀어넣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보부아르는 공교육에서 퇴출됐지만, 독일 점령기의 비시 정부가 보부아르를 정치적 이유로 쫓아냈다는 주장으로 이 사실을 묻어버렸다. “많은 여자들이 두 사람의 노리개화로 인한 고통을 증언해준다. 이 성 약탈자 커플은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봉건주의자였다. 영주들은 가신들의 육체를 마음껏 탐했다.” 비앙카 랑블랭의 <점잖지 못한 소녀의 회상>이 사르트르-보부아르 커플의 성적 쾌락에 동원된 노리개의 실상을 상세히 알려준다고 옹프레는 쓴다.
미셸 푸코를 이야기하는 장에서 옹프레는 미국을 거쳐 세계적으로 유행한 ‘프랑스 이론’이라는 것이 ‘철학적 횡설수설’이라고 직격한다. 그 ‘프랑스 이론’으로 거명되는 것이 라캉의 <에크리>(1966),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1972), <천 개의 고원>(1980) 따위다. “그런데 이처럼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의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서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 옹프레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글을 받드는 사람들을 겨냥해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서 빌린 한 줌의 개념들을 가지고 유희하는 앵무새들” 나아가 “바보로 여겨질까봐 두려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못하는 앵무새들”이라고 부른다.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프루동과 그의 아이들>. 프루동의 작업복은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여정을 충실히 보여준다. 노동자로서 소박하고 겸손한 자들 곁에 머물렀던 프루동은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독한 말을 뿜어내는 중에 다시 뜨겁게 껴안는 사람도 나타나는데, 아나키즘의 창시자라 할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1865)이 바로 그 사람이다. 프루동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혹독한 비판을 받고 반자본주의 혁명 전선에서 축출되다시피 한 사람이다. 하지만 옹프레는 마르크스야말로 문제투성이 인물이라고 지적한다. 두 사람이 결별한 계기가 된 것이 1846년 마르크스의 협력 요청을 거부하는 프루동의 편지였다. 이 편지에서 프루동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민중을 세뇌하고 이단을 파문하여 배척하는 새로운 교조, 새로운 신학, 새로운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 사상은 ‘기존의 불관용을 다른 불관용으로’ 대체할 뿐이다. 마르크스가 세운 공산주의 이념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을 띨지 미리 예견한 셈이다.
옹프레는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집안 자식으로서 평생 부르주아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했지만, 프루동은 가난한 부모에게서 자란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였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혁명사상은 책 속에서 건져낸 이념이었지만, 프루동의 ‘자유사회주의’ 사상은 삶의 실천 속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관념 속에서만 혁명적이었던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소유한 맨체스터 방적 공장 하나도 바꾸지 못하고 엥겔스의 돈에 의존해 살았다. 모든 형태의 지배를 반대한 프루동은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썼다. “통치당하는 것, 그것은 감시받고 조사받고 염탐당하고 지도받고 규제당하고 조종당하고 감금당하고 교화당하고 통제받고 평가받고 감정당하고 검열받고 명령을 받는 것이다. 자격도, 학문도, 덕성도 없는 자들에게.” 옹프레가 프루동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를 사유와 실천의 바탕으로 삼고 있음을 이 책의 흐름은 선명히 보여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