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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한국사회에 관한 종합건강검진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7 10:08

이권우의 인문산책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사회학자에게 듣는 한국사회 불안을 이기는 법
조형근 지음 l 소동(2022)

한동안 ‘자고 나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놀라운 경제성장과 한류열풍에 기대어 오늘의 한국사회를 자가진단한 결과였다. 기실 수치로만 보면 선진국이라고 떠벌려도 큰 문제가 없을 터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속살을 한꺼풀만 벗겨 보아도 과연 시쳇말로 ‘자뻑’하며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은 금세 동의하게 된다. 조형근의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는 한국 사회를 정밀하게 건강검진해보았더니, 세평과 달리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일곱 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1장 제목이 ‘불평등이 심해지는 세상’이다. 양극화 현상은 세계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정한 기회 아래서 성실하게 노동한 대가로 계층상승이 이뤄지고, 두터운 중산층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었던” 체제는 보수혁명으로 무너졌다. 공공자산의 민영화, 자산가격 상승, 세제개편 등으로 자본계급의 부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노동계층을 상징하는 열쇳말은 ‘프레카리아트’다. “직업안정성이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삶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계급”을 뜻한다.

토마 피케티 덕에 널리 알려졌지만 지금 전세계는 자산 불평등이 심해진 상태다. 피케티 지수인 β값(자본/소득)이 클수록 상속의 가치가 현재의 노동보다 더 센 것을 뜻한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2019년의 β값은 8.6배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20년에는 11.4배로 나오기도 했다. 1995년 5.8배, 2010년 7.5배였으니, 한국사회의 자산 불평등이 지속해서 심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정부 순자산이 많다는 점, 국민소득 대비 토지자산 가격의 비중이 높은 점이 그 원인이라 지적했다. 국가는 부유하고 부동산 불평등은 심하다는 말이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한마디로 정치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β값이 낮아진 것은 1935년 사회보장법을 제정하고, 1944년 20만달러를 초과하는 소득에 94%의 세금을 부과한 덕이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자본주의 황금기를 누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가 개입하여 자산 불평등이 완화되면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또다른 사례로 지은이는 농지개혁을 든다. 북한이 1946년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농지개혁을 단행하자 우리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6·25전쟁 직전 완료되었다. 이 조치는 전쟁 중에 점령지에서 북한군이 기층농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면서 지주의 토지재매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농민에게 자산이 형성되자 “안정감과 희망, 의욕”이 생기면서 농업생산성이 향상하고 교육열이 높아졌다. 그 결과로 농지개혁에 성공한 대만, 일본과 함께 우리는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반면, 실패한 남베트남과 필리핀은 아시아의 용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불평등한 선진국’인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로 지은이는 비정규직, 산업재해, 임대주택, 최저임금, 차별금지법, 난민 문제 등속을 꼽는다. “불평등을 확대하는 이윤논리, 약육강식의 욕망”이 낳은 이 지옥도에서 벗어날 길은 있을까. 지은이는 을끼리의 싸움에서 벗어나 연대와 협력을 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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