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는 얼굴들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
이사 레슈코 지음, 김민주 옮김 l 가망서사(2022)
나는 항상 어떤 문장을 마음속에 ‘기준점’으로 삼으면서 힘을 내왔다. (기준도 없이 힘을 낼 수는 없으니까.) 올해도 그 기준이 될 만한 문장들을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그중 두개는 이사 레슈코의 사진집 <사로잡는 얼굴들>에 나온다. 레슈코가 나이 들어가는 동물의 얼굴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부모님의 질환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구강암 5기였고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망상 증세가 심해지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지낼 요양원을 찾는 데 온 힘을 쏟을 무렵, 그는 서른네살 늙은 말 피티를 만났다. 그는 피티와 한나절을 보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카타르시스는 부모가 나이 들어 죽어간다는 사실에 따른 깊은 슬픔과 관련이 있다.
레슈코는 계속 동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 또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게 되지 않을까, 나이 들어가는 데 대한 두려움에 단련되기를 바라면서 찍었다. 그러나 죽음 직전에 구조된 동물들의 비참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동물들의 대변자가 되기를 원하게 되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동물들에 ‘대해서’ 말하지만 동물들을 ‘위해서’ 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무엇을 ‘위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좋고 아름다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암칠면조 애시는 그가 처음 만난 칠면조다. 생추어리에 오기 전 애시의 삶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애시의 몸에는 공장식 축산 농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부리 끝이 잘려 있고 가운뎃발가락도 잘려 있었다. 그러나 애시의 눈은 감정이 풍부했고 고요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추어리 랜선 입양 프로그램을 통해서 애시가 돌봄을 받도록 후원했다. 입양 증서에는 애시는 ‘수줍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우며, 과일 맛 탄산수를 좋아한다’고 적혀 있었다. 애시를 칠면조 고기로만 보는 사람에게는 아무 쓸데 없는 내용이었다. 애시는 레슈코가 후원한 지 약 1년 후 사망했다.
“애시를 만났을 때부터, 나이 들고 쇠약한 그가 오래 살지는 못할 것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시의 죽음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의 사진을 볼 때면 지금도 여전히 눈물이 난다. 그래도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 내가 칠면조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한다.” 바로 이 문장이다. ‘…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드린다.’ 이 문장을 올해 내 기준점 중 하나로 삼으려고 한다.
전에는 생명이라고 생각도 못 해본 것 하나하나를 고유한 생명으로 바라보게 된 순간 그의 사랑하는 능력은 생겨났다. 이런 사랑이 우리 현실을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나도 올해는 이 문장에 힘입어 내 사랑의 능력을 키워보고 싶다.
레슈코는 돼지, 당나귀, 닭, 염소 등 공장식 축산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마지막 얼굴을 찍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물론 연결이다. 그의 마음은 농장동물도 귀중한 생명체로 인간의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잔혹한 세상에서 다정함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레슈코는 나이 든 농장동물들과 함께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래의 나에게 닥칠 일에 대해 계속해서 두려워하겠지만 그래도 이 동물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초연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최후의 쇠락을 마주하고 싶다.” 그녀의 작업은 이렇게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과도 연결될 것이다.
<CBS>(시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