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쿨루스와 반약속주의
정도겸 지음 l 어션 테일즈 NO.5 수록(2023)
‘호문쿨루스와 반약속주의’는 국민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뇌과학을 동원하는 강력한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 국가는 몸의 감각과 두뇌의 감각 피질의 연결을 보여주는 작은 인간 형상을 만든다. 이 형상에 ‘호문쿨루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뒤, 이를 이용해 국민 각자가 품는 감정과 인간관계를 맺는 양상을 감시하고 제어한다. 소설의 화자인 ‘이프’는 건국 이후 전해 내려오는 단 하나의 ‘건전한 약속’,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호문쿨루스를 맞댈 수 있다는 국가 규정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규정과 상관없이 제 의지와 감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간다. 국가는 규정을 어긴 이프를 단호하게 제재한다.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맺지 못하도록 두 손을 잘라버린 것이다. 소설은 이프의 손이 잘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소 충격적으로 전개되는 이 짧은 소설은 동성애 금지에 대한 은유로, 혹은 금지된 모든 형태의 사랑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이프와 이프가 사랑한 ‘영원’의 행적을 통해 소설은 묻는다. 누가 내 감정을 조종하려 드는가? 내게 대뇌 피질과 감각을 준 것은 누구인가? 조종하려 드는 국가인가? 나의 대뇌 피질, 감각, 피부, 체내 장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국가는 내 신체 내부에 자리 잡은 대뇌 피질과 감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면서 어찌 감히 ‘올바른 사용 방법’을 거론하는가? 이는 한 줌 인간으로 이루어진 ‘권력’에게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보내는 경고다. 역사 이래 존재해온 모든 불합리한 금기들에 보내는 고급스러운 경고. 지구 곳곳을 채운 다양한 생명체는 신의 작품이다. 신이 깃들어 있는 생명이 제 생명의 일부를 이루는 기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소설은 이러한 메시지를 과학의 차가운 언어와 인간의 뜨거운 정동을 버무려 강렬하게 전달한다. 과학의 지배력이 막강해진 미래 사회 특유의 건조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두른 가운데, 사회의 고정된 습속과 철통 같은 당위에 던지는 물음과 질타가 힘차게 퍼져나간다. 타인의 생각을 교정하려는 모든 종류의 시도에 보내는 세련되고 엄중한 다그침이다. 그러지 마라. 네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 너 자신, 네 감정과 사랑을 제어할 수 있느냐? 네 머리를 열어 네 피질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느냐? 타인의 대뇌 피질의 작동에 관여하려는 헛되고 무엄한 꿈을 그만 멈추어라.
과학과 상상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야기, 줄여 말하면 에스에프(SF) 소설이라 할 수 있을 이 소설이 독자를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들며 파고드는 것은 제 감정과 의지에 충실한 이프와 영원이 대표하는 ‘젊음’의 치열함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돌리고 자신을 투신하는 영원의 마지막 대사는, 과오를 저지르며 못나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뒤늦게나마 자신에게 충실하려는 한 인간의 안간힘을 보여준다. “잠에서 깨어나니 내 몸에 이상한 활력이 돌았다. 불이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빛을 내는 것처럼 재를 뒤로 흩뿌리며. 이프, 너를 만나러 간다.”
정아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