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연구자가 발견한 역사의 조각들
이윤석 지음 l 한뼘책방 l 1만7000원 멀리 프랑스 아날학파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역사를 문화나 생활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기술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개인이나 소집단의 실제 삶을 보여주는 미시적 연구가 당시 시대상을 더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을뿐더러, 발언권 없던 하층계급의 삶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소설 전공 국문학자인 저자는 옛소설을 연구하며 갈무리해뒀던 조선시대 미시사 연구의 단초 스무개를 열쇳말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매일 저녁 목멱산 꼭대기에서 15분 동안 타오르던 불덩어리(봉화) 다섯개(조선 후기엔 네개)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빛처럼 신비롭게 어둑해진 도성을 비췄다. 한양에는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볼거리, 놀거리가 넘쳐났기에 궁궐과 관청, 상설 시장, 임금님 행차 구경 등 ‘한양 ㅇ대 볼거리’를 담은 책이 유행할 정도였다. 여관이자 술집이었던 주막은 탄막, 술막으로도 불렸으며 도적들의 본거지이자 장물을 내다 파는 창구였다. 당시 명품으로는 각종 유리제품이 대표적이었는데, 호랑이 또한 공포의 대상이자 사치품의 상징(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이었다. 동시대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지와 마찬가지로 18세기 중반 이후 한양에서도 도서대여점(세책집)이 큰 인기를 끌었고, 서양에서 그랬듯이 지배계층 남성들은 ‘잘못된 풍조’라고 비난했다. 이런 상업서적을 제작하는 1인 출판사 사장(방각본 제작자) 가운데도 후대에 이름을 남긴 이가 있으니, 바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다. 아, 조선에서도 중하층과 여성이 독서계층에 편입되며 지식과 교양의 독점이 허물어져가고 있었구나!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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