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창작과비평 199호 수록
남현지 지음 l 창작과비평(2023)
새로운 상품을 구경하고, 사고 싶은 것을 골라 계산한 후 배달받아 사용하는 일까지 소비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특히나 온라인상에서 소비란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고 이뤄진다. 소비를 가능하게 만드는 누군가의 노동 역시도 눈에 띄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소비는 역으로 소비 이후의 전시를 부추겨 소셜네트워크 상에선 소비 체험에 대한 ‘후기’가 넘쳐나고, 다른 누군가는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홀로 그 후기에 담긴 정보를 좇으며 다음 소비를 준비한다. 여기까지는 ‘마트’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에 대한 특별할 것 없는 서술이다.
어떤 이들에겐 무언가를 ‘사기 편한 세상’이 곧 ‘살기 편한 세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러니까 마트 바깥엔 또 다른 마트가 있을 뿐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세상을 그저 수긍하는 이들에게, 마트가 던져주는 선택지 안에서만 최선을 다하는 일이 어떤 착각을 형성할 수 있는지, 그 착각이 곧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믿을 때 치르게 되는 대가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한다면 앞의 서술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약속이 남아 있다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요가매트를 찾으며/ 더 건강하게 튀긴 이 감자칩과/ 저 감자칩 사이/ 최저가와 할인가 사이에서/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멀티버스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모든 시간이/ 나의 선택이었다고/ 쓸쓸한 얼굴로 일기를 쓰고 있을 때도/ 휠체어에 앉아 피켓을 들고 있는 우주에서도/ 매일 아침 기도문을 외우는 내게도/ 마트와 감자칩이 있었고// 어떤 세계에서는/ 문자가 비위생적인 것이 되어서/ 물건에 표기가 금지되었다/ 문자 없는 거리를 만들었다는/ 신도시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감자칩을 뜯었고// 수백번에 한번은 투자에 성공했다/ 자신의 힘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균형 잡힌 생활을 좋아했다/ 내가 바란다고/ 감자칩도 몇 개만 먹을 수 있다면/ 괜찮은 간식이라고// 그 무수한 우주에 계속해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마트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쓰여 있다”(‘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전문, 남현지)
사방이 마트인 세계에서 우리는 “더 건강하게 튀긴” “감자칩”이 무엇인지만을 생각하느라 그 밖의 생각을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이 물건이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떻게 왔는지,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가치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타당한지, 우리의 삶은 진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와 같은 생각이 사라진 세계에서 주어진 선택지란 “마트와 감자칩”뿐. “나”는 하기로 한 소비만을 하면 그만이다. 생각과 함께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여러 얼굴이 지워질 때 삶은 오직 “나의 선택”, “자신의 힘으로”만 굴러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런가. 소비 이후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나. “온 우주가 바”란다는 “나”의 “건강”? 사고파는 행동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낳는 행위에 대한 상상력이 차단된 세계에서 “건강한 삶”이 무슨 소용인가. 어쩌면 시는 ‘각자도생’을 넘어 ‘각자도사(各自圖死)’를 부추기는 사회가 남기는 ‘행복의 약속’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따지고 싶은 게 아닐까.
양경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