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과 반성적 회고
알렉산드르 게르첸 읽기
문광훈 지음 l 아카넷 l 3만원
인물 탐구에 주력하는 독문학자 문광훈 충북대 교수가 쓴 <자서전과 반성적 회고: 알렉산드르 게르첸 읽기>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작가·언론인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게르첸(1812~1870)의 자서전을 주요 텍스트로 삼은 게르첸 연구서다. 게르첸은 유럽에 망명해 있던 1852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 <나의 과거와 사상>을 썼다. 러시아 사상사를 쓴 이사야 벌린은 이 자서전을 두고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에게 견줄 만한 책”이며 “19세기 최고의 자서전 가운데 하나”라고 평했다.
사후에 완간된 이 저작은 1920년대에 영어판(전 4권)으로 번역돼 나왔고, 1970년대에 700쪽짜리 한 권으로 축약돼 다시 출간됐다. 지은이는 이 책의 제1부에서 이 축약본을 저본으로 삼아 핵심 내용을 소개하면서 게르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한다. 제2부에서는 게르첸의 에세이와 논설 100편을 묶어 옮긴 영어판 <게르첸 읽기>를 바탕으로 삼아 언론인 게르첸의 사상을 살핌으로써 제1부의 내용을 보충한다. 게르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분명한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책이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게르첸. 위키미디어 코먼스
게르첸의 역사적 위상은 19세기 러시아 차르 체제 아래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실천한 사람이라는 데서 확인된다. 러시아 농민 공동체 ‘미르’를 중심에 놓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민중의 해방을 이끈다는 나로드니키(인민주의) 사상의 선구자가 게르첸이다.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게르첸은 모스크바대학에 들어간 뒤 혁명사상에 눈떠 차르정부에 맞서 싸우다 투옥된 뒤 두 차례나 유형을 당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막대한 유산을 받은 게르첸은 가족과 함께 1847년 유럽으로 떠나 조국 러시아와 유럽의 혁명운동에 매진했다.
특히 주목할 것이 이 유럽 망명 시기에 언론인으로서 한 활동이다. 1852년 영국으로 간 게르첸은 런던에 인쇄소를 차리고 러시아 농노제와 차르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 팸플릿을 발간했다. 1857년에는 오랜 친구 오가료프와 함께 주간신문 <종>을 발간했다. 11년 동안 쉬지 않고 나온 <종>은 러시아로 반입돼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1861년 농노해방령을 이끌어냈다. <종> 발간에 더해 게르첸이 힘쓴 사업 가운데 하나는 ‘국제노동자협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게르첸의 지원 속에 국제노동자협회는 1864년 결성됐으나,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주창한 마르크스 그룹과 아나키즘을 주창한 바쿠닌 그룹의 대립과 불화로 게르첸 사후에 해체되고 말았다.
이 책에는 게르첸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기술도 들어 있는데, 이 중에 특히 돋보이는 것이 바쿠닌에 대한 기록이다. “바쿠닌은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 내내, 그래서 여러 날과 밤을 통틀어 토론하고 강의하고 배열하고 소리쳤으며, 결정하고 지시하고 조직하고 격려했다. 잠시 자유로운 시간이면 책상으로 달려가 (…) 편지를 다섯 통, 열 통, 열다섯 통씩 썼다.” 위압적 거인이었던 바쿠닌은 혁명 사업에 관해서라면 초인적인 열정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바쿠닌은 ‘50살 때도 똑같이 방황하는 대학생’이었고 ‘집 없는 보헤미안’이었으며 ‘보기 드문 매력을 지닌,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사람’이었다. 기질적으로 아나키스트였던 게르첸은 바쿠닌에게 호의적이었다. 반면에 마르크스에게서는 거리감을 느꼈고 같은 런던에 살던 때에도 마르크스와 교류하지 않았다. 게르첸은 마르크스의 과학적 혁명사상을 수용하지 않았고 농민공동체를 사회주의적으로 재조직하는 아나키즘적 변혁에 찬동했다. 이 책이 그려내는 게르첸은 핍박받는 러시아 민중을 한없이 사랑하면서도 혁명 방법에 관해서는 온건하고 유연한 사고를 했던 품위 있고 균형 잡힌 혁명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