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어머니’의 이야기

등록 2023-02-24 05:01수정 2023-02-24 09:15

책거리

중년에 다다른 뒤에야 처음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 여간해서는 스스로 당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법이 없었거든요. 어머니는 언제나 지극히 현실적인 과제들에만 몰두하는 듯했고, 그건 대부분 이 가족이 별탈없이 굴러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노년에 접어든 뒤엔 되레 ‘과거를 불태우려는’ 모습도 엿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 ‘쓸데없는 소리’라며 못마땅해하거나, 옛날 사진이 담긴 앨범들을 두고 ‘몽땅 버려도 된다’고 한다거나….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란 부제가 붙은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휴머니스트)를 보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누구의 아내이고 며느리이고 엄마”로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는 지은이 어머니의 말이, 마치 저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들려주는 말 같았거든요. 한 인간에 앞서 ‘어머니’로 먼저 존재하길 요구하는 압도적인 규정성 아래에 가족 ‘바깥’이란 없는 듯 살아온 한 여성의 내면. 구체적인 삶의 조건과 양태는 물론 다르지만, 제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그 아래엔 아마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붙들고 다시 새기며, 지은이는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제 생각은 결국 생각으로만 남았고, 1년여 전 갑자기 어머니를 떠나보낸 저는 여전히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습니다. 드물게 남겨진 옛 사진에서 ‘어머니’ 아닌 어머니의 아련한 흔적을 더듬어볼 따름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1.

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현금다발 든 돼지저금통 놓고 운동회?…‘오징어게임2’ 예고편 2.

현금다발 든 돼지저금통 놓고 운동회?…‘오징어게임2’ 예고편

흥행 파죽지세 ‘베테랑2’…엇갈리는 평가에 감독이 답했다 3.

흥행 파죽지세 ‘베테랑2’…엇갈리는 평가에 감독이 답했다

천만 영화 ‘파묘’보다 더 대단한 웹툰이 있다고? 4.

천만 영화 ‘파묘’보다 더 대단한 웹툰이 있다고?

두 전쟁을 담은 국내 첫 장편…20년차 ‘공부’하는 작가의 도리 [책&생각] 5.

두 전쟁을 담은 국내 첫 장편…20년차 ‘공부’하는 작가의 도리 [책&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