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l 민음사(2022) 나희덕 시인의 시 ‘샌드위치’에서 시인은 2022년 10월15일 토요일, 서울역 파리크라상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난 뒤에야 그날 새벽 한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교반기로 빨려 들어가 숨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사망 현장에서 만든 샌드위치 4만여개가 모두 유통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먹은 샌드위치도 그중 하나였을까?” 동료들은 바로 다음 날 사고 교반기를 흰 천으로 덮고 작업을 재개했다. 일주일 후 같은 계열사 제빵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샌드위치를 먹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이 한마디에 담긴 연민 어린 슬픔, 분노, 다정함을 모르지 않는다. 지난주 식당에서 충전하려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내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나는 식당 밖으로 나가 통화를 했다. 그 모습을 옆 테이블 사람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래된 휴대폰 쓰시네요! 저도 오래전에 그걸 썼었는데… 바꿨어요.” 내 휴대폰은 사용한 지 대략 십년은 된 것 같다. “배터리 괜찮아요? 왜 안 바꾸세요?” 사실 이런 질문 많이 받았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내 대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들릴 텐데….’ 진실은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게 이런 말이 자꾸만 들려왔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필수적인 광물 중에 콜탄이라는 것이 있다. 콜탄에서는 탄탈룸이 추출되는데 탄탈룸은 전기를 꼭 붙잡고 있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콜탄이 가장 많이 묻혀 있는 나라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정보기술(IT)산업이 발달하자 콩고민주공화국이 부자가 되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아동들은 강제노역에 시달리게 되었고 고릴라들은 서식지를 잃었다. 휴대폰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이 말이 생각났다. 그는 내 대답을 잘 들어줬다. 그러고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솔직히 그의 반응에 감동했다. 지금까지 휴대폰을 바꾸지 않는 이유를 말해봤자 반응은 무반응이거나 핀잔이거나 “그래도 바꿔”였다. 감동이 과한 표현인가? 그러나 무시당했던 마음은 말 한마디로도 얼마든지 감동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얼마나 다정해 보이던지…. 만약 그가 핸드폰을 바꾸지 않기로까지 결심한다면 나는 감동에 부르르 떨 것이다. 노벨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다정한 서술자>에서 ‘다정함’을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방식으로 꼽는다. 올가는 다정함은 질투나 범죄를 유발하지도 않고, 그것에 걸고 맹세하는 사람도 없지만 자발적이고 사심이 없고 연민에 기반한 운명을 공유하게 만드는 가장 겸손한 유형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책에 나오는 문장 중에 ‘다정함’ 항목에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와 그 이전 세대는 세상을 향해 늘 “네. 네. 네” 라고 말해야 한다고 훈련 받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되뇌곤 했다. 나는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볼 것이고, 여기도 가 보고 저기도 가 볼 것이며, 이런저런 모든 걸 경험할 거야. 나는 이것을 가질 테지만 그렇다고 저것을 포기할 이유는 없잖아…. 지금 우리 곁에 출현한 새로운 세대는 작금의 새로운 상황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란 “아니. 아니. 아니”라고 말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 나는 이것도 포기하고 저것도 포기할래. 이것도 자제하고 저것도 자제해야지. 필요 없어. 안 해. 갖고 싶지 않아. 단념할게. 나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 중 포기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정함을 이렇게 정의내려본다 ‘다정함: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 전에 하던 일을 자제하고 더 이상 하지 않게 하는, 포기와 하지 않음의 사랑.’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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