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 강의 1·2
에픽테토스 지음, 김재홍 옮김 l 그린비 l 3만3000원
로마 제국 시대의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꼽힌다. 세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저마다 달랐는데, 세네카는 귀족이었고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였으며 에픽테토스는 노예 출신이었다. 신분의 격차가 컸지만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뒷세대 아우렐리우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나는 루스티쿠스가 베낀 에픽테토스의 기록들을 빌려 읽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에픽테토스가 철학학교 선생이었다는 것도 나머지 두 사람과 다른 점이다. 에픽테토스 사상이 후대에 남은 것은 제자 아리아노스가 에픽테토스의 강의 내용을 충실히 기록해 책으로 묶어낸 덕이었다. 아리아노스는 에픽테토스 강의록을 모두 여덟 권으로 펴냈고, 그 강의록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엥케이리디온>이라는 소책자에 담아내기도 했다. 그 소책자의 원본인 에픽테토스 강의록 가운데 네 권이 지금까지 전한다. 이 네 권 중 두 권이 서양 고대철학 전문가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의 손을 거쳐 <에픽테토스 강의 1‧2>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연전에 <엥케이리디온> 번역과 해설을 묶은 책을 낸 바 있는 옮긴이는 이 번역본에서도 방대한 주석과 해제를 달아 에픽테토스 철학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로마 제국 시대의 노예 출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에픽테토스 사상은 이 철학자의 불우한 삶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할 만하다. 에픽테토스는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에서 기원후 55년 즈음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고대 역사백과사전 <수다>에는 에픽테토스가 “류머티즘을 앓아 다리를 절었다”고 나오는데, 인생의 어느 시점에 질병의 침탈로 불구의 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운한 인간은 어린 시절 로마로 팔려와 네로 황제 비서였던 에파프로디토스의 소유가 됐다. 에파프로디토스는 영민한 노예 소년을 스토아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보내 철학을 배우도록 해주었고, 뒤에 노예 신분에서도 해방시켜 주었다. 루푸스의 철학은 실용적이고 실천적이었다. 의학 지식이 신체를 돌보는 데 유용하지 않다면 쓸모없듯이, 철학 이론도 영혼을 돌보는 데 유용하지 않다면 쓸모없다는 것이 루푸스의 믿음이었다. 루푸스의 가르침은 에픽테토스 철학이 나아가는 데 결정적 지침이 됐다.
학업을 마친 에픽테토스는 루푸스의 도움으로 로마에서 철학 교사가 됐다. 하지만 1세기 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통치 방식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철학자들을 추방하자 에픽테토스도 로마를 떠나 그리스 서부 해안 도시 니코폴리스로 갔다. 그 도시에 철학학교를 세운 에픽테토스는 곧 이름이 알려졌고 그곳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에픽테토스의 학교에는 많은 학생들이 들어와 기숙사 생활을 했고 고위 관료나 일반 시민도 찾아와 강의를 들었다. 2세기 초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픽테토스 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에픽테토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작은 오두막에서 침상과 램프만 두고 살았다.
<강의>는 노년의 에픽테토스가 한 공개 강의를 기록한 것인데, 맨 앞에 붙인 짧은 글에서 아리아노스는 스승의 말을 가능한 한 정확히 옮기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아리아노스 말대로 이 기록에는 선생의 말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선생의 성격과 인품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에픽테토스는 소크라테스를 철학적 모범으로 삼았는데, 이 강의록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연상시키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이유로 에픽테토스는 당대의 소크라테스로 통했고, 그 강의를 기록한 아리아노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을 닮았다 하여 ‘로마의 크세노폰’으로 불렸다. 에픽테토스의 철학학교는 전문 과정과 비전문 과정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책은 비전문 강의의 기록이어서 초심자들에게 철학을 훈련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서 철학은 스토아 철학, 더 정확히 말하면 ‘스토아 윤리학’이다.
에픽테토스 윤리학의 핵심은 <강의> 제1권의 첫 장에 등장하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의 구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점이 에픽테토스가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라고 부르는 ‘의지’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의지의 통제 안에 있는 것을 말하며,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이란 우리 의지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을 말한다. 에픽테토스는 의지의 통제 안에 있는 것으로 ‘이성’을 꼽는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이 윤리적 삶의 출발이다. 이때 이성의 통제 밖에 있는 것으로 에피쿠로스가 지목하는 것이 재산‧명예‧지위‧신체 같은 것이다. 우리의 의지가 좌우할 수 없는 이런 외적인 것들에 매달려 사는 것이 노예의 삶이다. 반대로 의지가 통제하는 이성에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이다. 철학이란 우리를 자유로 이끄는 이 이성을 돌보는 일이다.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외적인 것을 바꾸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올바른 이성의 지도를 따라 마음을 다스려 나갈 때 열리는 경지가 ‘아파테이아’(apatheia, 부동심)이고 ‘아타락시아’(ataraxia, 평정심)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에픽테토스 철학은 의지에서 출발해 이성을 통과하여 자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윤리학이다. 자유야말로 에피쿠로스 철학의 궁극 목표다. 자유는 외적인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자유다.
에픽테토스는 평생 신을 받드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우리는 신에게서 와서 신 안에 살다가 신에게로 돌아간다. 그런 뜻을 담아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우주의 시민이다”라고 공언했다. 우주 안에 우리가 있듯이 신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우주가 있듯이 우리 안에 신이 있다. 에피쿠로스의 신론은 초기 기독교 교부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두 신론 사이에는 다른 점도 많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구원이 신의 능동적 개입을 통한 구원인 것과 달리, 에픽테토스의 구원은 인간의 자기 구원이다. 신이 준 이성의 능력을 발휘해 도덕적 완전성을 구현하는 것이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인간의 자기 구원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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