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 공공도서관이 책 등 자료를 사는 데 쓴 돈이 전체 도서관 예산의 8.9%에 그쳐, 미국(10.5%), 오스트레일리아(10.4%), 독일(10.1%), 일본(18.7%) 등 다른 나라에 견줘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인구 1인당 공공도서관 예산이 5만원 이상으로 한국(2만4209원)의 두 배 이상, 인구 1인당 도서관 자료구입비도 5천원 이상으로 한국(2161원)의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총예산 가운데 자료구입 예산의 비중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도서관법을 정비하는 등 대안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는 11일 ‘도서관 자료구입비 적정성 산출 및 증액 방안 연구’ 결과를 보고서로 내고, 오는 17일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함께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를 연다고 밝혔다.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비가 적다는 지적은 그간 끊이지 않았지만, 법령상 기준의 문제, 국외와의 비교 등 종합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와 표순희 숭의여대 교수가 수행한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2017~2021년 한국 공공도서관 전체에서 도서관 전체 예산 가운데 자료구입에 쓴 예산 비중은 연평균 9.4%였다. 2021년에는 전체 예산 1조2501억2400만원 가운데 자료구입에 1115억7천만원을 써, 그 비중이 8.9%에 그쳤다. 자료 유형별로 볼 때, 5년 동안 도서 구입비의 증가율은 3.6%에 그친 반면 전자자료 구입비 증가율은 21.7%로 나타났다. 한국 공공도서관 숫자는 2005년 514곳에서 2021년 1208곳으로 늘었으나, 도서관 업무의 본령인 자료구입에는 갈수록 적은 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국외 주요국 사례를 보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독일의 공공도서관은 총예산 가운데 10% 이상을 자료구입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2020년 총예산 132억달러 가운데 13억9755만달러(10.6%), 오스트레일리아는 2021년 12억8647만달러 가운데 1억3253만달러(10.4%), 일본은 2021년 1492억6859만엔 가운데 279억1430만엔(18.7%), 독일은 2021년 10억4162만유로 가운데 1억1463만유로(11%)를 자료구입에 썼다. 영국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비만이 10%에 못 미치는 9.4%가량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총예산 대비 자료구입비 예산의 비율을 최하 8%에서 최고 20%까지로 정해놓고 도서관마다 자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한 것을 주요국 공공도서관 정책의 특징으로 꼽았다.
도서관법·학교도서관진흥법·대학도서관진흥법 등은 시행령에서 “봉사 대상 인구 구간별로 기본 장서 대비 10% 이상을 매년 구입”, “매년 100종 이상의 자료를 추가로 확보”, “전문대학의 경우 학생 1명당 1권 이상, 그 이외의 대학은 학생 1명당 2권 이상을 신규 수집” 등 자료구입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도서관 예산 또는 전체 기관 예산에서 자료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법령 외에 한국도서관협회에서 만든 ‘한국도서관 기준’ 정도가 공공도서관의 예산을 인건비 45~55%, 자료비 20~25%, 기타 운영비 25~30%로 배분하고 “매년 10% 정도의 수준에서” 책 수를 늘리도록 안내하고 있으나, 현실은 이 지침의 3분의 1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료구입비에 질적인 측면이 반영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 도서관협회는 구입 5년 이내 장서의 비율(장서의 최신성)을 60~65%로 유지하도록 규정하는데, 한국은 29.6%에 머물고 있다. 만약 이를 2026년까지 40%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려면 2021년 1116억원 수준의 자료구입비를 2022년 2090억원으로 두 배가량 증액해야 한다.
연구진은 도서관법 시행령을 개정해 “매년 도서관 예산의 20% 이상을 자료구입비로 편성할 것”을 규정하고, 도서관 운영 평가에서 ‘자료구입비 및 연간 장서 증가 수’에 대한 점수 배분을 상향해 자료구입과 평가 제도를 연계하는 대안 등을 제시했다. 인문·사회 전문인 길 출판사의 이승우 기획실장은 “교양의 토대가 되는 학술서의 경우 초판을 1000부도 못 찍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 공공도서관 1000여곳이 의미 있는 신간들만 제대로 구입해준다면 출판문화 전체를 든든하게 지탱해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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