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비커밍 아스트리드>(2018)는 <삐삐 롱스타킹> 등으로 현대 어린이문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전기’ 영화입니다. 노년의 린드그렌이 독자들의 편지를 읽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주로 그려지는 것은 17~18살 청소년기부터 20대 초반의 린드그렌입니다. 스웨덴 작은 마을 지역신문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던 린드그렌은 열아홉 살에 유부남인 편집장의 아이를 임신하고, 보수적인 지역사회의 눈을 피해 덴마크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지 못했던 경험은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어린이의 고독을 보듬으려 한 위대한 작가를 만들었습니다.
보수적이었던 당시 북유럽 사회에서 가족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10대 미혼모가 그나마 기댈 수 있었던 숨구멍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린드그렌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창비)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린드그렌은 스웨덴 최초의 여성 변호사 에바 안덴, 페미니스트 잡지 편집장이자 의사로서 미혼모들에게 상담을 해주던 아다 닐손 등을 찾아가 “말과 서류”의 도움, 곧 의료적·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들의 소개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위탁모 그룹의 일원인 여성 마리 스테벤스가 운영하는 위탁 가정을 알게 되어, 4년 가까이 아이를 이곳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서로를 보듬는 자발적 연대가 있었기에,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인식도 끝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덴마크 위탁 가정의 주소는 ‘호베츠알레’, 우리 말로 하면 ‘희망의 길’이었답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10대 미혼모’였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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