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흰동가리의 모습. 흰동가리는 수컷으로 태어난 개체가 환경에 따라 암컷으로 성 전환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퀴어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스탠드업 쇼’에서 “‘젠더 노멀’인 사람들은 성별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과잉 반응한다”고 꼬집습니다. 인간 사회는 유난히 성별, 특히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을 양 극단에 놓는 이분법적 구분에 집착합니다. 성은 남성 아니면 여성 둘 중 하나만을 타고나며 둘 사이에 공통점은 없고 온통 다른 것들만 있다는 상상, 과연 합리적일까요?
이런 이분법에서 벗어나 그저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갖은 차별·배제·혐오를 헤쳐온 퀴어들은 그런 상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명민하게 읽어내고, 때론 그것을 농담으로까지 승화시킵니다. 퀴어 예술가 ‘이반지하’는 새 책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이야기장수)에서 ‘부치’(남성적 성향을 지닌 레즈비언)에게 자궁이란 무엇인가 탐구합니다. “소개팅하고 있는데, 눈앞에 있는 ‘펨’(여성적 성향을 지닌 레즈비언)한테 나 지금 생리 터졌다고 생리대 빌려달랄 수는 없잖아.” 여성이라는 의학적·법적 규정과 달리 한평생 남성으로 살았고, 결혼 뒤에는 직접 아이를 임신·출산하는 등 아예 성별 이분법 자체를 거부하는 <논바이너리 마더>(오렌지디)의 지은이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생물들의 성 세계를 다룬 책 <암컷들>(웅진지식하우스)에서 봤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컷으로 태어났으나 환경에 따라 암컷이 되는 흰동가리 등 자연 속 성은 결코 이분법으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 역시 수정된 하나의 세포에서 나왔고, 서로 다른 점보다 서로 같은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남녀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 따위의 흰소리는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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