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중개 산업 파헤친 탐사 취재
글렌코어·비톨·카길·트라피구라 등
소련 붕괴, 중국 발전 등 기회 타고
모습 숨기며 어마어마한 수익 벌어
글렌코어·비톨·카길·트라피구라 등
소련 붕괴, 중국 발전 등 기회 타고
모습 숨기며 어마어마한 수익 벌어
원자재 중개 산업은 1960~70년대 석유 산업에서 큰 돈을 벌고 오늘날까지 기틀이 되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석유부터 밀까지, 자원 시장을 움직이는 탐욕의 세력들
하비에르 블라스·잭 파시 지음, 김정혜 옮김 l 알키 l 2만5000원 비톨, 글렌코어, 트라피구라, 카길 같은 이름들을 들어본 적 있는지? 대중에게 그리 친숙할 일이 없는 이 회사들은 석유, 금속, 밀 등 전 세계 부의 원천인 원자재를 중개하는 회사들이다. 세계 5대 석유 중개 업체의 일일 거래량은 전 세계 하루치 석유 수요의 25퍼센트에 맞먹고, 세계 7개 곡물 중개 업체는 전 세계 곡물과 유지작물 거래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전 세계 경제는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따라 흔들리는데, 이를 좌우하는 이처럼 거대한 존재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얼굴 없는 중개자들>은 영미권에서 오랫동안 ‘원자재 저널리스트’로 활약해온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이다. 이들은 “원자재 중개업체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최근에 낳은 ‘위험 사냥꾼’”이라며, 주요 업체들의 창업자, 임원, 트레이더들을 힘들여 인터뷰하고 촘촘한 취재를 바탕으로 이들의 역사와 현황을 상세히 파헤쳤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원자재 중개업체의 성격상 그들의 활동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원자재가 풍부했고 가격도 높지 않았던 시절, ‘위험 사냥꾼’들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될 것”이라 내다봤다. 냉전 시기 이례적으로 소련으로부터 원유를 사들였던 테오도어 바이서, 금속 중개로 필리프브라더스를 반석에 올려놓은 루트비히 제셀슨, 식량회사 카길을 국제무역의 정상으로 이끈 존 맥밀런 주니어는 ‘시조’ 3인방으로 꼽힌다. 이들은 국경을 넘고 유력자들과 네트워크를 쌓으며 정보를 수집해 사업 기회를 새롭게 창출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은 60~70년대 석유 산업의 대변혁과 함께 ‘대박’을 친다. ‘오펙’(OPEC) 창설 등 산유국들이 자원을 국유화하는 흐름을 타고, 원자재 중개 업체들이 그들의 석유를 세계시장에 팔아주는 역할을 꿰찬 것이다. 이집트-이스라엘 분쟁으로 수에즈운하가 폐쇄되어 중동산 원유 공급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 필리프브라더스의 트레이더 마크 리치는 이란의 은밀한 지원으로 이스라엘 한복판을 지나가는 송유관을 통한 원유 공급을 도맡으며 큰 재미를 봤다. 그가 세운 회사는 중앙은행의 돈이 말라버린 자메이카에 석유를 공급해주는 대가로 알루미늄 원자재인 보크사이트를 값싸게 쓸어가 더욱 큰 돈을 벌었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회사들이 오늘날 ‘큰 손’으로 꼽히는 글렌코어와 트라피구라다. 이처럼 원자재 중개 업체들은 시장 개방, 소련 붕괴, 중국 경제 발전 등을 기회로 삼아 그 몸집과 영향력을 극대화해왔다. 선물 계약 도입, 은행뿐 아니라 연기금까지 끌어들이는 ‘금융화’는 그들에게 큰 날개까지 달아줬다. 원자재 중개 업체들은 누군가의 어려움으로 돈을 번다. 미소 대립, 걸프전 등 국가간 분쟁과 대리전, 리비아 내전이나 차드 쿠데타 등 내전과 내정 불안 등 혼란에 발을 담그고 판돈을 건다. 관료와 정치세력을 주무르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유독성 폐기물 투기(코트디부아르)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치솟는 원자재 가격은 돈벼락을 내리고, 대개 비상장회사이기에 극소수만이 그것을 독차지한다. 세월이 변해, 이들에 대한 “은행, 규제자, 지속 가능성, 기후변화, 윤리적 경영 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다만 지은이들은 “아직도 원자재는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확실한 지름길 중 하나”라며 이들의 미래가 어떠할지 쉽게 속단하지 않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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