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일기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되돌아본다
도올 김용옥 지음 l 통나무 l 1만8000원
도올 김용옥(75) 전 고려대 교수의 <난세일기>는 올해 5월에 쓴 일기 모음이다. ‘난세일기’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윤석열정부의 폭주로 빚어지는 내치·외교·안보의 위기에 대한 우국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정부의 일방적 외교 정책,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려는 일본 자민당 정권의 행태를 비판하는 언어가 날카롭다. 동시에 이 책에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발표한 글을 비롯해 여러 편의 논술이 실려 있는데, 이 글들은 시사성을 넘어선 철학적 사유를 품고 있다.
이 글들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것이 신학자 안병무(1922~1996)의 탄생 100돌을 기념해 지난해 발표한 안병무론이다. 안병무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민중신학’이라는 독자적인 신학 사상을 세운 신학자이자 독재정권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저항 지식인이다. 도올은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조선사상사’의 계보를 잇는 토착적 사상으로 이해한다. 이 글은 그 계보의 출발점을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이에 벌어진 ‘사단칠정논쟁’으로 삼는다. 사단칠정논쟁은 인간과 우주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기틀인 이(理)와 기(氣)가 어떤 관계인가를 구명하는, 조선 유학사 최대의 논쟁이었다. 8년에 걸친 논전은 퇴계의 ‘이기호발설’과 고봉의 주장을 이어받은 율곡 이이의 ‘기발이승설’로 정립됐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은 순결한 원리인 ‘이’와 혼탁한 기운인 ‘기’가 각각 능동적으로 활동함을 주장하고, 기발이승설은 ‘기’의 능동성만을 인정하고 ‘이’는 그 기를 타고 수동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퇴계가 ‘이’의 능동성을 주장한 것은 사림의 타락이라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이’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을 강조함으로써 세상의 혼탁을 극복할 길을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은 이후 학맥의 흐름을 따라 남인에게 이어지는데, 이 남인 계보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 다산 정약용 집안의 천주교 수용이다. 정약용과 형제들은 천주교의 상제(천주)를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이’의 인격화로 보았기에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반세기 뒤 수운 최제우는 다산의 천주교를 지양·극복하여 동학을 세웠다. 동학의 하느님은 수직적인 구조 속의 하느님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 속의 하느님, 곧 ‘하느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같다’는 오심즉여심의 하느님이었다. 이 오심즉여심의 사상이 “민중이 곧 예수이고 예수가 곧 민중이다”라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으로 이어진다. “수운은 하느님이라는 주어를 사람으로 바꾸었고 안병무는 예수(=하느님)라는 주어를 민중으로 환원했다.” 안병무의 민중신학에서 인간세의 역사는 “민중과 하느님이 서로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고 도올은 말한다. 조선사상사의 면면한 흐름이 안병무에 이르러 민중신학이라는 독자적 신학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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