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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구로부터 자유를 되찾으려면 자유를 발명해야 한다 [책&생각]

등록 2023-07-07 05:01수정 2023-07-07 09:33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인근에 모인 4천여명의 시민들이 ‘두번째 지구는 없다’는 펼침막 등을 들고 정부에 기후정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인근에 모인 4천여명의 시민들이 ‘두번째 지구는 없다’는 펼침막 등을 들고 정부에 기후정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지구가 아프다
니콜라이 슐츠 지음, 성기완 옮김 l 이음(2023)

나처럼 너무 더워서 잠을 잘 못 자는데 에어컨은 켜고 싶지 않은 사람이 주인공인 책이 있다. 니콜라이 슐츠의 <나는 지구가 아프다>다. 배경은 폭염이 덮친 프랑스 파리다. 주인공의 생각은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에어컨 바람 없이는 잘 수가 없는데 그 바람에 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고 열기는 더 많아질 거 아닌가? 에어컨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확실히 인류세는 잠자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힘겨운 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은? 지구를 위한답시고 고기 대신 택한 아보카도도 퀴노아도 재배 과정에서 물 부족을 야기하고 정신을 깨워주는 커피도 이름 모를 땅과 강을 황폐화한단다.

어떻게 일상적 행동이 다 골칫덩이란 말인가. 애인이라면 모를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생명에까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 골치 아픈 일 아닌가? 게다가 집안 사정도 복잡하다.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는 자식들의 물질적 풍요를 위해, 성장이 옳은 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식 세대들은 당신들이 우리 미래를 도둑질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힘들어서 떠오른 생각. 탈출하자! 여행 가자! 섬으로 가자!

그런데 짐을 챙기다가 다시 한 번 놀란다. ‘티셔츠 한 장당 물 2700ℓ 소비, 탄소 2.6㎏ 배출, 청바지는 물 3300ℓ에 탄소 11㎏, 농구화 한 켤레는 무려 13㎏의 탄소배출이라니’.

겨우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자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런데 잔잔한 바다가 속으로는 요동치고 있었다. 지중해 어류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상어의 절반이 멸종위기다. 난민들은 절망적으로 지중해를 건너려고 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해초들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도 환경과 생물다양성이 보존되는 섬에 가면 좀 낫겠지!

그러나 어쩜 좋단 말인가. 아름다운 섬은 관광객이 늘면서, 유람선이 부두에 정박할 때마다 땅이 깎여 나가고 기후위기와 맞물리면서 식수까지 부족한 상황이 되고 있었다. 세계 최고 부자 루이뷔통 회장의 초호화 요트가 머물던 섬이지만 주민들도 두 편으로 갈라져서 갑론을박 중이었다. 관광을 더 활성화해 수익을 계속 내자는 쪽과 이제라도 자연을 보존하자는 쪽으로. 섬의 한 할머니는 미안하지만 그에게 다른 데로 좀 가주면 안 되냐고 한다. 하긴, 물과 살 곳이 사라지는데 수익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자유롭게 여행도 못 한단 말인가? 지구가 제아무리 나의 자유를 견디지 못해도 그래도 내 자유는 소중한 것인데. 지구야, 나를 억압하지 말고 내 자유 돌려줘! 이렇게 해서 기후위기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실존의 문제가 돼버린다. 때마침 슈퍼리치들은 낯선 행성에 도착하는 자유를 꿈꾼다.

계속 지구에 살아야 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에 해답의 첫걸음은 책 제목 ‘나는 지구가 아프다’ 안에 들어 있다.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했다지만 우리는 ‘지구냐 나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민을 한다. 해법은 지구와 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땅과 바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지구가 살아나야 나도 되살아난다.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도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니까. 생명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민과 존중과 책임이 필요하고 (기술력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가 가진 힘이다. 자유를 되돌려받으려면 자유를 발명해야 한다. ‘모든 이와 비인간과의 결합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다른 이와 함께하는 나의 존재’가 되는 자유를.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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