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학상 이례적 만장일치
28회 수상작 출간
믿음 없이 존재 불가능한 세계
“근래 가장 완성도 높은 공모작”
28회 수상작 출간
믿음 없이 존재 불가능한 세계
“근래 가장 완성도 높은 공모작”
제2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김희재(36) 작가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출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김희재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도저히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적 안간힘” “텅 빈 탱크에서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사람” “실체가 없으므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믿음” 그러한 “믿음의 역설”…. 심사위원들의 독후감이 이러할진대, ‘믿음’이라는 관념어가 이처럼 넘치는 소설을 만나보긴 어려울 것이다. 믿음의 실체를 낚아내는 경로는 둘이다. 소설은 일단 이 세계 ‘믿음’의 방법론을 구체화해 보인다. ‘탱크’라는 독특한 기도실이 그 구실을 한다. 김제 어느 야산에 위치한 탱크는 빈 컨테이너다. 탱크를 관리하는 손부경(36)을 통해 이용자는 예약하고 혼자 그곳을 찾아간다. 안과 밖엔 십자가도, 미륵불도, 하물며 촛불 하나 없다. 신이 없다. 교주, 교리도 없으나 사용 규칙은 있다. 둘이 들어가선 안 된다. 자신의 기도는 자신에게서 자신에게만 닿으리라. 컨테이너 자체를 훼손해선 안 된다. 믿는 행위를 훼손하는 행위다. ‘바깥’은 훤하고 ‘안’은 암막으로 컴컴하다. 규칙보다 이용자들이 ‘기도발’을 키우려는 규칙 아닌 규칙이 더 많은 듯하다. 마침 마을은 옛 서낭당이 있던 공터를 ‘신성한 구역’이란 푯말로 구분해뒀는데 탱크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거기서부터 기도하려는 자들은 “천천히 마음을 다림질해야” 한다. 기도 전 눈물이 쏟아지면 그냥 우는 게 낫다. “안 울려고 해도 결국 어떻게든 울게” 된다. “일단 실컷 울고 나면” “덜 우는 날이 오는 거”고 “그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문을 외우면” 된다. 왜 우는가, 무슨 기도문인가, 무엇을 위해서든 필요한 건 기도하는 탱크가 아니라 기동하는 탱크 아닌가. 이런 의문 앞에서 소설을 가득 채운 믿음은 종교적 믿음이 아닌 개인적인 ‘의지’, 의지 이전의 자책과 슬픔이라 기도는 제 절망과 상실을 견뎌내려는 지극히 자폐적인 ‘독백’임을 알게 된다. 사랑의 고백. 그렇게 정도선(38)은 이혼 후 슬럼프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탱크는 지인이 알려줬다. 작가로서의 성공은 미국에 두고 온 딸 로사를 만날 유일한 방법인 터 도선은 탱크를 더 절박하게 찾는다. 도선은 이 소설을 이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둡둡(26)과 양우(28)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다소곳하던 소설이 초입 한번 비등하는 지점이 바로 둘의 등장 이후다. 이즈음이겠다, 작중 시점으로 치면. 사람이, 길이, 도시가 장맛비에 잠기던 한여름 사랑하던 둘이 ‘믿음’으로 틀어지기 시작한다. (지난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성봉 작가도 둘이 채팅하는 때부터 읽던 자세가 달라졌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둡둡과 양우는, 탱크로 형상화된 믿음의 동기와 방법론을 넘어, 믿음의 부유 상태와 결과를 통해 믿음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이 시대를 핍진하게 감각시킨다. 감성적인 대학생 둡둡, 공장 노동자 양우는 영화 채팅앱을 통해 만나 마음을 나누게 된다. 양우는 10대 때 어머니와 할머니를 여읜 이래 홀로 바라고 말 것도 없이 “노동이라는 분쇄기에 갈려 나가기 바빴던 하루하루”를 살아온 자다. 둡둡은 부모와의 소중한 시절을 어제처럼 기억하며, 동성애 커밍아웃 뒤 가정의 화목이 산산조각 난 오늘을 견디는 중의, 하여 내일은 더 절망스러운 이다. 그가 간절히 바라는 건 하나다. 부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다 함께 무지개색 찬란한 거리를 걸을 수 있길. 둡둡이 탱크에 기댄 까닭이다. 여기서 놓칠 수 없겠다, 어떤 믿음은 열정과 노력만으로, 가령 진격하는 탱크로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타게 기도하고 더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실하여 집착할수록 불신받는 믿음 아니던가. 결국 양우조차 둡둡에게 “정신 차리라” 소리 지르고 만다. 가장 ‘외롭고 낮고 쓸쓸한’ 믿음조차 품는 데가 즉 탱크다. 과연 둡둡이 탱크 안에서 울음으로 토했을
제2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김희재(36) 작가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심사위원들의 추천사를 보고 울었다”고 말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시상식.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강성봉·박서련·주원규·강화길 작가, 서영인 평론가, 정아은·김유원 작가, 수상자 김희재 작가, 선우은실 평론가, 김금희 작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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