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의 모습. 누리집 갈무리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모든 나무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l 어느 여성 식물학자가 전하는 나무의 마음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지음, 장상미 옮김 l 갈라파고스 l 1만7500원
물고기를 잡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라. 일본의 속담이다. 숲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은 썩어가면서 땅속의 철분과 결합할 수 있는 부식산을 방출한다. 이 철 성분이 숲에서 강으로 흘러들어가 바다와 만나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돼 바다를 풍요롭게 한다. 모든 나무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나 이상 품고 있다.
여성 식물학자인 저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는 12살에 부모를 잃은 순간부터 나무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뻥 뚫려버린 마음의 큰 구멍을 채워준 것은 어머니 고향인 아일랜드 켈트 문화의 교육이었다. 켈트족의 브레혼법에 따라 부모가 없는 아이는 ‘모두의 아이’로 자란다. 이 교육 방식 덕분에 저자는 자연을 든든한 후견인으로 두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익혔다. 대학에서 식물학과 의학생화학을 전공하고 켈트족 후손으로서 몸으로 체화한 자연의 지식을 연구하는 ‘찐’ 과학자로 성장했다. 세포 조직의 이상을 판별하는 데 활용하는 ‘생물 발광 현상’을 발견하고 인공 혈액 ‘무기질혈색소’ 등을 개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놓지 않았다.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 이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켈트 문자(오검문자)의 기원인 소나무·마가목·사시나무·참나무 등 20가지 나무 이야기는, 잃어버렸던 인간과 나무의 관계를 소환한다. 예를 들어, 사과 표면에는 보이지 않는 약 성분이 있다. 이 성분이 왁스 같은 방수막을 형성해 가을철 꼭지가 떨어지기 전까지 나무에 달린 사과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 켈트족은 사과나무를 신성하게 생각하고, 사과 열매를 ‘울’(오검문자에서 큐(Q)에 해당)이라고 불렀다. 비바람이 불고 구름낀 날이 많은 지역에 사는 켈트족에게 사시나무는 기상예보관 역할을 했다. 바람이 불 때면 부들부들 떨며 서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부들대는 나무’라고 불렀다니, 몸을 심하게 떨면 ‘사시나무 떨 듯하다’고 하는 한국어 표현이 떠오른다.
나무와 연대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연과 사람, 사회를 다시 잇고자 작은 행동을 제안한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나무를 심고, 작은 화분 하나를 이웃들에게 보여주는 활동이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로 연결되어 모든 생명의 그물망을 통해 퍼져나가는 방식을 발견하는 일은 자연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 중 하나이다. 내가 이해하고 일구어나가려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