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악령에 씐 ‘KKK’를 종식시킨 여성들 [책&생각]

등록 2023-07-28 05:00수정 2023-07-28 08:56

1922년 9월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서 열린 KKK 행사. 사진 안 설명이 무릎 꿇은 백인 남성들의 KKK 입단 교육행사임을 추정케 한다. 하워드 카운티 역사학회 제공, 코코모 트리뷴
1922년 9월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서 열린 KKK 행사. 사진 안 설명이 무릎 꿇은 백인 남성들의 KKK 입단 교육행사임을 추정케 한다. 하워드 카운티 역사학회 제공, 코코모 트리뷴

링 샤우트
피(P). 젤리 클라크 지음, 이나경 옮김 l 황금가지 l 1만5000원

미국 남북전쟁 이후 조직됐다가 쇠퇴한 백인폭력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재건 수준을 넘어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한 때가 1920년대 초중반이다. 전국 회원이 최대 5백만 대까지 추정됐고, 그 영향력 아래 있던 상원의원만 15명이었다. 100년 전 이맘때인 1923년 7월4일 인디애나주 코코모에서 10만명이 집결한 미 독립기념일 행사도 그 위세 중 하나다.

미국 인디애나주 KKK의 지도자 데이비드 C. 스티븐슨(D. C. Stephenson). 교육공무원인 여성 매지 오버홀처를 납치, 성폭행, 살인한 혐의 등으로 1925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미국 인디애나주 KKK의 지도자 데이비드 C. 스티븐슨(D. C. Stephenson). 교육공무원인 여성 매지 오버홀처를 납치, 성폭행, 살인한 혐의 등으로 1925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올 4월 미국 신간 ‘A Fever in the Heartland’(심장부의 열기)는 KKK가 어떻게 미국사회를 장악했는지를 ‘법 위’에서 군림했던 인디애나주의 KKK 지도자 데이비드 시(C). 스티븐슨(1891~1966)을 중심으로 톺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클랜이 승인한 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클랜이 소개한 요리법으로 백인들이 식사를 했으니 KKK는 감정, 신념이 아니라 질서이고 생태계였다. 흥미로운 건 이 책이 스티븐슨의 ‘악마성’을 고발하는 데 기여한 성폭행 희생자인 백인 여성 매지 오버홀처(1896~1924)를 ‘클랜을 종식시킨 여성’으로까지 호명하는 점. 뉴욕타임스는 서평에서 KKK 조직 내 부패와 위선으로 이미 붕괴가 야기됐다며 “이건 너무 나갔다”고 썼다.

이 책이 1920년대 KKK의 광포한 부활에 대한 작가 티머시 이건(69)의 논픽션 탐문이라면, ‘링 샤우트’는 역사학자 P. 젤리 클라크(52)의 픽션적 탐문이다. 같은 시기, 무엇보다 클랜을 종식시킨 ‘여성들’에 대한 소설적 상상으로 가득하므로 더 나가네 마네 할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소설 속 클랜은 차별에 동조하는 “얼간이 백인”들이다. 이들에게 침투한 악령이 바로 쿠 클럭스다. 이런 기호의 세분은 악마에 씐 게 아니라면 인간이 스스로 그처럼 잔혹할 수 있느냐 묻는 듯하다.

주인공은 “인간임을 기억 못 하는 허연 악령”, 즉 쿠 클럭스를 찾아 없애는 흑인 소녀 사냥꾼들.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진 할머니는 쿠 클럭스에게 가족을 잃은 마리즈에게 신신당부한다. “아직 인간인 자들은 죽이지 말라”고.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의 한 장면. 미국 중고등학교에선 인종차별 교육용으로 교실에서 상영해 보여주기도 한다.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의 한 장면. 미국 중고등학교에선 인종차별 교육용으로 교실에서 상영해 보여주기도 한다.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은 KKK의 부활에 큰 동력뿐 아니라 심지어 그간 없던 복장 콘셉트까지 제공하며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한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다. 실재한 이 사실을 토대로, ‘국가의 탄생’이 재상영되려는 1922년 조지아주가 소설의 배경이 된다. 소녀 사냥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도살자 클라이드’와 대결해야 한다.

클랜을 보며 “저 기분 좋은 증오를 봐라. 우리가 심은 게 아니라, 늘 저들 안에서 자라고 있다. 조금만 격려하면 꽃을 피우지. 영화 필름 몇 개만 보여 주면 하나로 뭉쳐 열심히 우릴 찾아온다” 말하는 악령 클라이드는, 작가 의도와 무관하게, 무솔리니의 선동술까지 연구했다는 인간 스티븐슨을 떠오르게 한다.

코네티컷대 사학과 조교수로 있는 클라크는 2016년 판타지 중편을 첫 출간한 이후 2021년 이 소설로 네뷸러상, 로커스상, 영국환상문학상을 받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중증외상센터, 원작 소설 초월…주지훈 배우는 말 그대로 만찢남” 1.

“중증외상센터, 원작 소설 초월…주지훈 배우는 말 그대로 만찢남”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2.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해뜰날’ 가수 송대관 유족 후배들 슬픔 속 발인 3.

‘해뜰날’ 가수 송대관 유족 후배들 슬픔 속 발인

16살 박윤재, 로잔 발레콩쿠르 우승…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4.

16살 박윤재, 로잔 발레콩쿠르 우승…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5.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