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3년 이후, 그 행성 이야기
조수진 지음 l 글로연 l 3만5000원
‘2053년 12월30일 오후 4시23분 최후의 인간이 사망한다. 환경오염, 온난화, 기아… 인류는 끝내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 한 줌 남은 자원을 두고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결국 지구의 파멸을 지켜볼 수 없던 우주평화단은 지구 파괴의 주범인 인간을 멸종시키기로 한다.’
에스에프(SF) 영화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의 세계관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인류 멸종 280년 뒤인 2333년, 인류 복원 프로젝트를 연구한 오징어 박사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전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폭염으로 신음하는 이번 여름, 책은 인류가 지구 환경을 계속 파괴한다면 ‘멸종의 미래’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2053년 이후, 그 행성 이야기. 글로연 제공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광활한 세계관에 걸맞게 접이책 형식으로 구성된 책을 아래로 펼치면 길이가 1695㎜에 달한다. 벽에 걸어놓고 볼 수 있도록 책의 물성을 살렸다. 책을 펼치면 8층짜리 ‘코스모빌라’에 사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빌라 각층에는 인간 남성과 인간의 옷차림을 한 도도새, 스탤러바다소, 바다밍크 등의 동물이 살고 있다. 도대체 이들이 누군지 궁금할 때 불을 끄고 깜깜한 곳에서 책을 펼치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코스모빌라’라는 이름이 야광으로 ‘멸종의 역사’로 바뀌고, 빌라 거주자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모두 과거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이나, 기후위기로 멸종된 동물들이다. 8층짜리 코스모빌라는 인류가 지구와 생명체를 괴롭혔던 ‘멸종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2053년 이후, 그 행성 이야기. 글로연 제공
‘2053년 이후, 그 행성 이야기’ 책을 펼친 모습. 글로연 제공
이 책은 ‘2053년 이후, 그 행성 이야기’(오른쪽)와 별책인 ‘오징어 박사의 연구노트’로 구성돼있다. 글로연 제공
별책인 ‘오징어 박사의 연구노트’와 코스모빌라의 모습이 담긴 본책을 번갈아 보면 저자의 생각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특히 연구노트에 소개된 수많은 생명체들의 멸종 시기와 그 원인을 눈여겨 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지구는 모든 생명체가 그들의 삶을 당당하게 영위해 나가야 할 터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기심을 앞세워 다른 종들을 해하며 멸종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간 역시 곧 멸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림책이라는 인쇄 매체가 가진 특성과 가능성을 통해 의미 있게 전달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긴 시간을 쏟았다”고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