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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이 호러는 익숙하다, 내 집 현실이 더 공포이므로

등록 2023-08-18 05:00수정 2023-08-18 09:17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전건우·정명섭·정보라·정해연 지음 l &(앤드)(2023)

코로나 기간에 생긴 습관으로, 모든 자취생의 바이블이라는 인테리어 쇼핑몰 사이트를 탐독하게 됐다. 처음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비밀을 다 집어넣을 수납장을 사려고 들어갔는데, 어느새 거기 올라온 다양한 집들이 사진들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요새는 추천 알고리듬을 타고 한국의 여러 자취방을 찾아가는 유튜브 채널에 빠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집, 그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삶이 있다. 집들을 보여주고 그것을 구경하는 행위에는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 깔렸다. 이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안전히 머물 나만의 장소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다.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은 이런 바람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호러 미스터리 단편 네 편이 수록된 앤솔로지이다. 공포소설가인 전건우의 ‘누군가 살았던 집’은 “영끌 주식”으로 사채까지 빌려 쓰고 서울로 도망친 커플이 수상하게 저렴한 오피스텔로 이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음산한 기운이 화장실 배수구에서 악취와 곰팡이처럼 피어오른다. 다양한 추리소설을 쓰는 정명섭은 동시대적인 이슈, 전세 사기와 특수 청소를 결합한 활극적인 소설 ‘죽은 집’을 선보인다. 남편의 부정으로 이혼한 두 여성이 힘을 모아 자신의 죽은 집을 살려내려고 동분서주하는 이야기이다. 환상소설집 ‘저주토끼’의 정보라는 비정규직 대학 강사들의 현실을 담은 서간체 소설 ‘반송 사유’를 실었다. 외진 지역 어두침침한 집에서 갇힌 듯 사는 여성이 보내는 메일 속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으스스한 공포가 전해진다. 이메일이라는 현대적 요소를 썼지만 셜리 잭슨의 고딕 호러 같은 클래식한 정취가 있는 작품으로, 폐쇄공포적인 신경증을 자극한다. 긴박감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쓰는 정해연은 ‘그렇게 살아간다’를 통해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돌봄 노동의 무게를 묘사했다.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의무의 굴레가 범죄로 번져가고 유령으로 나타난다.

현재 한국 장르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인 만큼 각기 독창적 방식으로 공포의 공간인 집을 성실히 그려내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하다는 인상도 있다. 작품 내적 특성이라기보다는 독자인 우리가 집과 관련된 현실 괴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백억대의 전세 사기, 철근이 누락된 부실 공사 아파트, 집 안에서 있어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는 스토킹 범죄, 멀어질 수 없지만 같이 살기 고통스러운 가족, 뉴스에는 소설보다 더 충격적인 공포가 흘러넘친다.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은 동시대의 초상을 그려내지만, 동시에 호러 소설의 가장 고전적인 주제에 천착한다.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고, 당신의 집은 더더욱 안전하지 않다.

한편에는 소위 미드센추리 모던풍 인테리어에 북유럽산 조명을 단 집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물이 새지만 빛은 들지 않는 집이 있다. 어떤 이에겐 몸을 하나 누일 집조차 없다. 이 극명한 차이가 우리의 공포인가? 그럴 수도. 하지만 실은 이 차이가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 적어도 이 소설집은 읽는 이의 마음속에 불안의 파문을 일으키며 지금 당신이 누운 이 집 안을 돌아보라고 한다.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 안도감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운 좋은 사람이라고 음울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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