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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여성, 하층민 책읽기 도운 세계의 세책점들

등록 2023-08-25 05:00수정 2023-08-25 09:12

18세기의 세책사
소설 읽기의 시작과 유행
이민희 지음 l 문학동네 l 1만7000원

세책(貰冊)이란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일을 말한다. 그런 일을 하던 가게를 세책점이라 하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도서대여점이 되겠다. 한국에서 도서대여점은 1990년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누리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업종이다. 그러나 도서대여점이 아닌 세책점은 일찍이 18세기 조선에서 매우 성행했으며 일본과 유럽, 미국 등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세책 문화가 발달했다. 고전문학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민희 강원대 교수가 쓴 ‘18세기의 세책사’에 그런 사정이 자세하다.

조선에서는 독자를 찾아 다니며 직접 책을 팔던 책쾌 중 일부가 한곳에 자리를 잡고 찾아오는 독자에게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쪽으로 영업 방식을 바꾼 것이 세책점의 출발이었다. 세책점에서는 언문으로 필사된 소설이 인기를 끌었으며 글을 깨우친 사대부가 여성들이 주 독자층을 이루었다. 기존 체제에서는 책읽기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여성과 하층민들이 세책점의 주요 고객을 이룬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이었다. 그리고 이렇듯 새롭게 형성된 독자층이 흥미 위주의 소설을 선호하면서 근대 소설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1842년부터 1세기 가까이 영업을 한 무디 세책점이 3부작 장편소설을 주로 취급한 탓에 세 권짜리 소설이 영국 소설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월터 스콧은 ‘웨이벌리’를 비롯해 장편 14편을 출판했는데 모두가 3권짜리였다.

18세기라는 동일한 시기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독서 문화의 혁신을 가져왔던 세책점은 공공 도서관의 확충과 신문·잡지의 발달 같은 외적 요인에 밀려 차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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