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두번째 장편 ‘마주’를 펴낸 최은미 작가. 창비 제공
마주
최은미 지음 l 창비 l 1만6800원
이 소설을 한마디로 비유하자면 ‘코로나 시대 김지영’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개인들의 보편적 인물로서 ‘82년생 김지영’이 호명되었듯, 코로나 재난을 시야 바깥에서 애면글면 감당해야 했던 40대 엄마들의 보편적 형상으로 수미와 나리(‘나’)가 등장한다. 정신질환까지 앓게 된 82년생 김지영에게 마흔이 된 2020년 코로나까지 들이닥친 것이라 해도 지나칠 게 없다.
서하 엄마 수미의 삶이 특히 그러하다. 또래 아이들 덕에 가까워지고 종종 격의 없는 술자리도 함께 즐기던 사이였으나, 수미에 대한 나리의 관찰과 평가는 가혹하다. 교대를 졸업했고 편하고 재미있는 남편과 만나 공방을 운영 중인데다, 딸 은채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나리와 수미의 세계는 원체 다른 것이다. 코로나로 두 세계의 색상 차는 더 확연해진 듯하다. 수미가 누구인가. 학원차량 운전기사로, “술에 취하면 자신처럼 엉망인 여자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고 넋두리하던,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묻던”, “비겁한데다 멍청하기까지 한 년”이다. 게다가 “자신의 딸을 발바닥만 한 신문지 위로 밀어 넣은 채” “딸의 세상을 최선을 다해 좁게 만들어온” “내가 수미 딸로 태어나지 않은 건 천운”이라 생각하게 하는 여자 아닌가.
그 수미가 기정시의 67번 코로나 확진자로 판정을 받으며 동선이 낱낱이 드러나고, 덩달아 나리공방과 나리도 비난과 고립의 궁지에 몰린다. 수미는 서하도 보지 못한 채 8주간 격리된다. 확진 판정 이틀 전 거실을 부수던 엄마로부터 서하를 나리가 ‘구출’해 간 탓이다.
둘의 심리와 상태의 ‘동선’을 세밀히 드러낸 뒤, 작가 최은미는 둘(의 관계)이 다시 치유되는 여정을 모색한다. 나리가 어렸을 때 자기네 과수원 일을 돕던, 거칠면서도 다정한, 한없이 야무지게만 보였던 박만조 아주머니를 회상하면서다. “만조 아줌마도 2020년 여름을 살고 있다. (…) 나는 그 당연한 사실에 가볍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리는 수미를 데리고 박만조를 만나러 간다.
‘코로나 시대 김지영’으로 빗대긴 했으나, 소설 ‘마주’는 박만조, 아니 “만조 아줌마와 사과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즐겁게 썼다”는 최은미로 인해 결국 상처 후, 단절 후를 좀 더 흔쾌히 ‘마주’보게 한다.
“나는 …수미가 무언가를 더는 견디지 않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러면 나도 내가 있는 곳을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치워두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그만큼 수미와 서하는 나와 은채의 일상 가까이에 있었다.” 애초 단절될 수 없는 관계망인 것이다.
‘마주’는 최은미가 6년 만에 내놓은 두번째 장편으로 2021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단편 ‘여기 우리 마주’에서 비롯했다. 마주는 소재가 아닌 태도일 터, 마중물 되어 최은미는 더 확장되고 또 깊어질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