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놓을 용기관계와 문화를 바꾸는 실전 평어 모험이성민 지음 l 민음사 l 1만6000원
어린 여자는 종종 ‘반말’의 대상이 된다. 끝이 짧은 문장이 귓전을 때리는 경험이 반복되면 ‘언제 봤다고 반말이신지…?’ 하는 심정에 나 역시 반말로 응수할 때도 있다.
존댓말과 반말로 나뉘는 한국어 체계에서 반말의 용도는 이처럼 한정적이다. 같은 나이로 묶인 친구들과 반말로 대화를 나누는 학창시절이 지나면, 서열을 확인하고 호칭을 정리하는 언어생활이 우리를 기다린다. 친구가 아닌 관계에서 반말이 튀어나오고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것은 대개 ‘시비’의 순간이다. 주고받는 말만 따지면 평등이겠으나 바람직하진 않다.
책은 “한국 사람에게 없는 언어적 평등은 (시비의 순간에서 발견되듯) 적대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 아니라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라고 진단하며,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평어’의 사용을 제안한다. 상대방을 “해영아” 대신 “해영”이나 “너”로 칭하는 반말을 하자는 것인데, 아랫사람을 하대하듯 부르며 적대로 나아갈 가능성은 차단하고 “이름의 고유함”을 살린 평등한 대화를 추구하자는 취지다. 본래의 이름을 부른다는 점에서 영어 이름을 도입한 일부 기업의 문화와도 구분된다.
많은 한국인의 평균적인 언어생활을 고려하면 평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은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평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사용자들은 이름 호칭법에 금방 익숙해졌”다는 저자의 경험담이나 “‘너’가 사용되지 않는 곳에서 차츰 ‘나’도 사라진다. 아니면 ‘너’ 없이 ‘나’만 남거나” 같은 분석은 흥미롭다. 만 나이의 적용으로 서열 정리가 조금은 난감해진 지금이 어쩌면 ‘말 놓을 용기’를 낼 적기일지도 모르겠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