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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 가을, 애서가의 추리소설 ‘비블리오 미스터리’ [책&생각]

등록 2023-09-15 05:00수정 2023-09-15 18:04

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l 엘릭시르(2023)

가을이 되면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과거의 슬로건이 머릿속에 각인된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은 격변하는 기후위기와 실시간 온라인 콘텐츠 범람의 시대, 날씨는 책에 빠져들 만큼 쉽게 서늘해지지 않고 어느 계절에도 독서 인구는 딱히 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가을이 오면 책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새삼 떠올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추리소설이 비블리오 미스터리이다. 이 장르에서는 세계의 신비가 담긴 고서를 찾는다거나, 책 속에 숨긴 비밀을 쫓는 모험이 그려진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에는 아주 개인적이고, 그러기에 확인할 수 없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상오단장’은 오래된 책에 수록된 단편을 찾아 그 속에 감춘 수수께끼를 푸는 추리소설로, 비블리오 미스터리 장르에서도 개성적인 작품이다.

“추상(追想)”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이고, “오단장”은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를 가리킨다. 스고 요시미쓰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학하고 큰아버지의 고서점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어느 날, 기타자토 가나코라는 여성이 고서점을 찾아와 1970년대 문예지에 실린 아버지의 단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아버지인 기타자토 산고가 생전에 써서 필명으로 발표한 이 다섯 편의 단편은 소위 ‘리들 스토리’(수수께끼란 뜻의 riddle)로 결말이 없다. 가나코는 아버지가 남긴 글에서 각 단편의 마지막이라고 추정되는 문장을 발견했고, 이야기와 문장을 맞춰서 오래전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알고자 한다. 요시미쓰는 가나코를 도와 이 단편을 찾고, 그 결말을 통해 진실도 알아내야 한다.

헌책 수집가들은 이 소설 속 옛 책을 찾아가는 과정에 호기심을 느낄 법하다. 트릭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일찍이 먼 곳을 여행하다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다”로 시작하는 다섯 편의 단편을 재해석하는 방식에 매료될 것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라이트노벨 학원물부터 역사 미스터리까지 모든 종류의 추리소설을 장르의 최고 기술로 쓰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걸작으로 꼽힐 만한 ‘추상오단장’은 우화적 수수께끼와 현실의 살인사건을 결합하여, 감정의 깊이를 파고든다. 각 단편의 스토리를 따라가면 결국 이런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가나코의 아버지는 어째서 단편의 결말을 지웠을까? 소설에 숨긴 것은 사건의 진상을 밝힐 진실일까, 사랑하는 이를 지킬 거짓일까?

그런 관점에서 ‘추상오단장’은 이야기의 본질을 쫓는 메타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야기 속에 진실이 깃들어 있다고 믿지만, 그건 사건의 진실이 아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진실일 뿐이다. 그나마 그 마음조차도 확실히 알 수 없다. 그 “영원히 알 수 없음”이 바로 수수께끼의 매력이다.

기타자토 산고의 다섯 번째 단편 ‘눈꽃’의 결말은 이러하다. 눈에 파묻힌 스웨덴의 마을, 사람들은 빙하 속에 있는 것이 나오면 숨겨진 마음마저 모두 밝혀지리라 믿었다. 글쓴이는 그런 날은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소설의 결말이고 작가가 마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여기서도 마지막 문장은 생략하니, 책에서 직접 보시길 바란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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