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현의 첫 소설집
소수자들 애틋한 연애담
차별사회 대항서사로 풀어
‘장송행진곡’ 시집도 출간
소수자들 애틋한 연애담
차별사회 대항서사로 풀어
‘장송행진곡’ 시집도 출간
첫 소설집 ‘고스트 듀엣’을 펴낸 시인 김현(43). 그는 한겨레에 “이야기가 많이 떠오르기도 해 근래 소설에 더 집중하고 있고, 마술적 사실주의에 흥미가 간다”고 말했다. 사진 ©신나라, 한겨레출판 제공
김현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이 소설집은 연애담으로 가득 차 있다. 연인의 관계는 익살맞고 애틋하고 안타깝고 귀하다. 이런 특색을 각기 소설이 나눠 띤다는 게 아니다. 11편 단편들이 이 모든 기운을 어지간히 다 담아낸다. ‘작가의 말’로도 전제된바 “증오와 살육”의 시대인데 말이다. 특히 이 소설들 주인공에겐 멸시와 차별이 일상인 시대, 작정한 듯 ‘달달한’ 연애를 예찬하는 작가의 이름은 김현(43)이다. ‘수월(水月)’의 연애사부터 들어보자. 차거도에 있는 식당 달래네 주인 은숙이 죽고, 자식 용연이 이어받는다. 나이 마흔에 섬으로 들어와 복희도 만난다. 용연의 육지 이야기는 끔찍한 노동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복희의 섬 이야기는 용연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둘은 만난 지 석달 만에 살림을 합한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방세간은 단출하게….” 하지만 달래네 맞은편 만선횟집이 들어서고, 인근 해안가 횟집들까지 집어삼키면서 달래네는 위기에 처한다. 복희가 반건조오징어 매장을 달래네 아래 복희네로 차려 반전을 꾀한다. 오라는 사람은 오지 않고 대신 꼬인 길고양이 열두 마리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라 이름 부르며 돌봤는데, 그게 차거도 명물이 된 덕분…이라기보다 (십이묘를 검색하면 만선횟집이 연관검색어로 떴으니까) 트로트 오디션 준우승자 승남이 복희네 반건조오징어를 안주 삼아 1일 4캔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탄 덕분에 숨통이 트인다. 용연과 복희는 오디션 탈락한 경의 팬이라서 오징어는 경에게 보낸다. ‘승남도 좋아하는 복희네 반건조오징어’로. 그게 또 화제가 될 줄이야. 물건은 없어 못 팔고, 복희는 대한어버이협회 산하 태극강철부대에서 연사로까지 초청하는 지경을 맞는다. 근처 작은책방을 운영해온 정경원이 복희네를 돕기로 한다. 하지만 가게는 태풍 록시나가 휩쓴다. 천연스레 이 사정 저 사정 풀어놓는 김현의 입담은 오래전 한창훈이나 천명관을 떠올리게 할 정도인데 기색만 그러할 뿐이다. ‘본 투 스토리텔러’라기보다, 김현의 재담은 철저히 사회의 날 선 입담에 스러져가는 자들을 위한 위무, 나아가 대항적 만담 같다. 기실 복희도 용연도 여성이요, 죽은 은숙도 가끔 이승을 들러 셋이 함께 얘기 나누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터, 이야기는 자본에도, 재난에도, 남성 어르신끼리 박 터지는 이장선거에도, 하물며 세간의 세치 혀에도 굴복하지 않는 이들에 의한 것이다. 마술적 사실로서 저승서 놀러 오는 은숙의 말이 그러하다. “혼자보단 둘이 좋은 거야. 둘보단 셋이 좋고. 내가 쟤네 둘(딸 용연과 복희)이 사랑하는 사이란 걸 진즉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행복했겠니….” 하지만 모든 연애가 ‘수월’할 리 없겠다. 이별의 공식은 ‘견본세대’에서, 이별 뒤는 ‘고스트 듀엣’, 그럼에도 다시 꿈꾸는 재회의 환희는 ‘혼자만의 겨울’에서 감각적으로 살아난다. ‘견본세대’는 최근의 부동산 문제를 자락에 깔고 있다. 주인공 둘은 나고 자란 가정환경도, 성격도 조금 다르다. 한 명은 참는 사람이다. 넉넉지 않았고 “비가 와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 집… 화장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집… 라꾸라꾸 침대에서 조심스레 사랑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집”을 가장 작은 소원이라 말하는 이다. 10년 영화 현장 스태프로 일한 탓일까. 참을 만큼 참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참는 사람. 상대는 참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넉넉한 집에서 외동으로 자랐다. 상대에게도 악의 없이 할 말을 다 한다. 처음부터 풀린 사람이다. 연애하는 둘의 엇갈릴 새 없는 추억들이 있다. 만나 첫 여행을 가고, 자작나무 이어지던 하얀 밤 첫 키스를 나누고, ‘이러려고 데려왔군’ 일찌감치 준비한 말로 새침하고, 입술을 포개던 이도 “오늘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전하고, 서로 그 마음을 마음에 묻었던 날처럼 말이다. 하지만 둘은 임대아파트 견본주택을 보러 간 날 건건이 부딪힌다. 그날 둘은 헤어지고 만다. 산꼭대기 낡은 주택에 질색하고, 결국 “둘이 꼭 같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니잖”냐 말하는 연인에게 참던 연인이 참지 못하고 결국 속내를 털어놓은 후과다. “나는 사실, 오늘 좀 들떠 있었어. 너랑 처음으로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니는 거니까……. 그래서 새벽까지 영상 편집을 해서 넘겨놓고 왔어. 오늘만큼은 다른 데 한눈팔기 싫어서…” 말하자면 들떠선 안 되었던, 둘은 모두 남성이다. 김현의 연애담 주인공은 대부분이 성소수자다. 같은 이름으로 이 소설과 저 소설에 등장한다. 남녀로만 이분될 수 없는 세계에서의 흔한 사랑을 기록하는 김현의 방식인 셈이다. 연애는 연대이고, 연대는 연애다. 김현이 이를 낙관하는 배경은 소설 속 시(‘고스트 듀엣’)로 대변될 것 같다. “파랑새를 본 적 없어서/ 파랑새가 나오는 꿈을 꿨다/ 파랑새도 나를 못 봤으니까/ 내가 나오는 꿈을 꾸겠지” 짝을 잃은 상민에게 한 아이가 먼저 죽은 오빠를 추억하며 읊조리는 시다. 오빠가 파란색을 좋아해 지었다고 아이는 말한다. 김현과 김현들이 꿈꾸는 세계는 아직 본 적 없어서, 그 세계도 멀찌감치서 김현들을 꿈꿀 것이다. 소설집 ‘고스트 듀엣’을 퀴어 문학 대신 ‘소수자 후일담’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최근 김승옥문학상을 받은 작가 권여선으로 대표되는 여전히 각별한 ‘386 후일담’이 있듯, ‘소수자 후일담’은 이제 시작되었고 더 많아질 것이며 더 ‘달달해’질 것이다. 2009년 등단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현은 커밍아웃을 한 게이로서, 성소수자 권리운동에도 적극 나서왔다. 시도 그에겐 “리얼리즘”이다. 김현은 14일 한겨레에 “근래 소설에 좀 더 집중하고 있고, 특히 마술적 사실주의에 흥미가 간다”고 말했다. 시의 실현이 소설에서 이뤄진달까. “다 죽는 것이 아니라 다 사는 것으로 바꾸고 싶었다”(‘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고, 확 풀어써도 소설에선 괜찮다.
후기 “이 정권서 혐오가 다시 거세져 의지도 상승한다”
시와 소설을 병행하는 일이 어렵진 않을까. 김현은 시는 주로 평일에, 소설은 주말에 몰아 쓴다. 가급적 한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스스로 말하길, 다행히도 그는 “말이 많은 편이다.” 시는 그나마 덜어내고, 소설은 덜 그럴 뿐, 소설의 입담이 시의 입담이기도 하다. 그는 2016년 문단 내 성차별 폭력과 여성혐오 실태를 실명 글로 ‘고발’했다. 미투와 함께 이후 문단의 변화폭은 뚜렷했다는 게 중평이다. 김현은 한겨레에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서 사회적 혐오는 다시 거세지고 있다”며 “시곗바늘이 돌아간 느낌”이라고, “대신 우리의 의지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절망과 그럼에도의 낙관은 최근 함께 내놓은 시집 ‘장송행진곡’(민음사)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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